한국일보

<여성의 창> 유전

2004-03-29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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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김<회사원>

요즘 말로 ‘몸짱’인 유명한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이 당대의 지성이었던 버나드 쇼에게 청혼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의 육체와 당신의 지성이 만난다면 우리의 2세는 얼마나 멋질까요?’ 형편없는 외모의 소유자이며 독설가인 버나드 쇼는 바로 이렇게 응수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의 지성과 나의 육체가 만난다면 어떻게 되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구에 회자되는 재미있는 일화이다.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할 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들의 유전형질이 어떻게 조합되어 2세가 나올지 생각 안 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는 본능을 가진 것 같다. 키가 작은 사람은 상대방이 키가 크기를 바라고, 눈이 작은 사람은 상대방의 큰 눈에 반하고 등등, 그런데 이 복잡한 유전자라는 것이 인간 마음대로 좋은 것만 쏙쏙 뽑아서 합쳐지는 것이 아니다. 붕어빵 부자나 국화빵 모녀처럼 어느 한쪽 만을 닯기도 하고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숨겨진 유전형질이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 부부가 결혼사진을 보면서 아직 생기지도 않은 우리의 2세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있다. 바로 얼굴형인데 아기가 딸일 경우에는 특히 걱정된다. 둘 다 만만치 않은 ‘얼큰이(얼굴이 큰 사람)’인데다 나는 동그란 얼굴의 전형, 그이는 네모난 얼굴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동그라미와 네모가 만나면 무엇이 나올까? 요즘 텔레비젼을 보면 다들 CD 한장으로 가려지는 조그만 얼굴에 달걀형 얼굴도 넙적하다 하고, 좀 길은 듯 싶은 말상의 얼굴들 뿐이다. 그런데 우리 둘의 얼굴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조그만 얼굴에 뽀족하고 긴 턱이 나올 유전자는 없어 보인다.

결국 나는 우울한 목소리로 꼭 딸을 낳고 싶다는 남편에게 ‘성형수술 해줄 만큼 돈 많이 벌 자신 있으면’ 이라는 단서를 단다. 동그란 얼굴 때문에 사춘기 때 조금 고민했던 게 갑자기 굉장히 고통스런 기억처럼 느껴진다. 동그란 것도 고민인데 만약 사각이면........남편은 내게 사각진 턱이어도 예뻤던 여배우들의 이름을 들려준다. ‘오드리 헵번’, ‘문희’ 등 그리곤 그 다음 말에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여배우들 사진 보여주면서 사각진 턱이 미인의 기본이라고 세뇌를 시키는 거야. 네모가 정상이고 달걀형이나 긴 얼굴은 다 이상한 거라구 하면, 우리 딸은 아빠 말이라면 다 믿을 꺼니까 얼굴 때문에 고민 안 할 꺼야.’ 사실 미인이란 그 시대와 사회의 모든 편견의 종합판이다. 내가 70년대 쯤에 살았으면 나처럼 동그랗고 통통한 얼굴이 인기였을 것이다. 지금도 북한 미인들 보면 대부분 우리 기준으로 볼 때 넙적하고 통통하지 않은가?

봄날씨 답지 않게 더워서 밤에도 창문을 열었더니 선뜻 부는 바람결에 꽃향기가 묻어난다. 저 어둠 속 어느 나무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달 빛에 꽃을 피웠나 보다. 아마 꽃이 작고 빛깔도 화려하지는 않았는지 거기 꽃나무가 있는 줄 낮 동안엔 몰랐었다. 저 꽃나무의 씨앗 속에는 모든 유전 형질이 들어있을 것이다. 꽃의 모양, 빛깔 그리고 향기도.
우리가 2세에게 물려줄 것이 겉모양 뿐이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가 이 밤 어둠 속에서도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데, 내가 물려줄 사람의 향기는 어떤 그윽함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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