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데스 밸리
2004-03-09 (화) 12:00:00
김병덕<주부>
오래 전 영화 깊고 푸른 밤에서 장미희가 안성기와 함께 죽으러 가던 인상적인 사막 길, 이름만 들어도 황량한 그곳이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다. 그러길 20년이 한참 지나고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 훌쩍 집을 떠났다. 자갈과 돌로 되어 있는 풀 한 포기 없는 산의 갖가지 모양과 색깔을 즐기다 보니 10시간 이상 운전함도 지루하지 않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는 소금 밭도 걸어보고, 갖가지 형상들에 감탄 하며 여기저기 열심히 보았다. 몇 군데 포장이 안된 도로 탓에 먼지로 뒤덮인 차가 사막의 건조함을 실감나게 하는데 별안간 비가 잠깐 뿌리더니 이내 무지개가 떴다. 사막에는 비가 안 오는 줄 알았다가 웬일인가 했는데 다음 날 내리는 비로 우기 임을 알았다. 물기라곤 없는 사막을 갔다가 오전 내내 내린 비로 물기를 머금은 산들을 보니 더욱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촉촉하다는 것은 목마름이 없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나보다. 젖어 있는 사막의 매력에 취하여 달리다 산에 이르니 비가 눈으로 변하였다. 좌슈아 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산 정상에 이르렀을 때 그곳은 이미 눈밭이 되었고 눈은 좀처럼 그치지 않을 듯 더욱 많이 내렸다. 새하얗게 변한 천지에 우리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부부임이 더욱 귀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 되었지만 정승처럼 서있는 열대 나무가 눈에 덮인 모습을 보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대책 없이 좋아하고 있는 마누라 비위 맞춰주느라고 태연한 척 눈덩이도 만들고 여유를 부렸지만 잘못될까 봐 겁이 났다는 남편이 돌아오는 내내 현실감 없는 마누라 태도에 질려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싫기는 커녕 흥이 나니 이번 여행은 진짜 성공이다.
생각보다도 아름다운 풍광도 좋았지만 첫날 밤에 데스밸리를 소개하는 모임에서 보았던 노부부들의 모습과 그들의 질문이 잊혀지지 않는다. 산전수전 다 겪은듯한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그들의 관심사와 질문은 진정으로 자연을 사랑하며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잠시 피어나 산등성이를 덮은 무지개를 보았냐고 물어보는 할머니와 그 아름다움에 16살 소녀처럼 가슴이 떨렸노라고 대답하는 노인들. 어제 저녁 무렵에 활짝 핀 오렌지 색깔의 키가 조금 큰 꽃 이름을 알고 싶다는 할아버지와 이제부터 피기 시작할 꽃 이름들을 소상하게 알려 주는 안내원, 고개를 끄덕이며 꽃 이름들을 다시 부르며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아름다운 그들의 노년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그 날 따라 밤하늘의 별들조차 유난히 반짝거린다.
건조해서 먼지만 내는 사나운 짐승 같은 사막도 비에 젖으면 따뜻한 영혼을 가진 사람처럼 아름다워지는구나. 그 사막에 피어나는 꽃들이 사랑의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 행복한 마음을 선물해 주는구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여행이 끝나도 잊혀지지 않고 마음을 적신다. 열심히 달려가서 증명사진 몇 장 찍고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는 여행이 아니라 비에 젖은 눈으로 보며 따뜻한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행복한 여행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