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정체성

2004-03-08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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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김<회사원>

정체성이란(identity) 말은 참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이다. 적어도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국적이 아니라 시험을 보고 선서를 하여 국적을 얻은 뒤부터는 말이다. 태어난 나라, 그리고 십 육년이 넘는 교육을 통하여 머리 속 깊이, 한국인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었던 나라는 이중국적을 허하지 않는단다. 신문 기사의 표현대로라면 두 나라에 동시에 충성을 다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음, 꼭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으니 한 사람만 선택하라는 드라마에 잘 나오는 대사와 닮았다. 양다리를 걸치고 갈팡질팡 하고 있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보니, 그 건 정말 골치 아프고 피곤한 일이다. 양다리 자체를 인정 안하는 것이 아예 오해와 불행의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서류 상으로야 구분이 간단해도 마음, 정서, 윤리, 핏줄 등의 단어와 정체성이란 단어가 같이 다니기 시작하면, 이건 정말 정체 불명이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한국에서 반미의 구호가 드높을 때는 서류와 정서 상의 국적이 같지 않은 사람들은 참으로 곤란하다. 우리가 두가지 중에 한가지만 선택하여야만 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같은 어쩔 수 없는 양다리의 고민을 덜어준 것은 미 고위 공무원이었다가 스파이 혐의로 수감생활을 하고 이는 로버트 김의 말씀이었다. ‘부잣집으로 시집간 딸이 친정이 곤궁해져 있는 데 어떻게 돕지 않을 수 있습니까?’
나의 양다리는 두 연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삼각관계가 아니었다. 나는 딸인 동시에 며느리라는 두가지의 역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A의 연인이면서 동시에 B의 애인이라는 것은 부도덕하거나 변태이겠지만, 딸이면서 며느리, 아들이면서 사위라는 것은 모두가 맺고 있는 관계이다. 비록 두 사돈이 대립하더라도 딸이면서 며느리인 우리는 두 집안 모두에게 상처가 작은 화해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명한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통하여 두 갈래 갈림길에 선 인간의 운명을 노래하였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중략....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 시는 정말 뛰어난 걸작이지만 나는 감히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결국 모든 길은 서로 통하여 있다고.........’ 어떤 선택이건 그 길을 열심히 따라 가면 두 길이 만나는 날이 있지 않을까? 지구는 둥그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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