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
2004-03-07 (일) 12:00:00
김부순 <버크, VA>
횡재를 한 듯한 나 혼자만의 공간. 그저 내 눈에 비치는 것만이 이 세상 전부인양 여겨진다.
이렇게 멋진 경치를 피부로 느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간호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도움으로 창가에 온 환자는 실망, 아니 절망했다. 마음에 위로를 주었던 것은 그림이었고, 창 밑은 구정물이 흐르는 개천이었다. 지금의 나는 누구의 도움 없이 창 밖의 숲을 도봉산, 설악산으로 여기며 바라볼 수 있다.
엄마가 오셨다. 언니가 “엄마가 너 추울거라면서 스웨터하고 밍크코트를 챙기더라”며 “그저, 막내밖에 몰라” 했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면 변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변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를 여전한 것으로 생각한다. 고정관념 탓이다.
큰 언니와 나는 터울이 많이 진다. 조카랑 한 살 차이니까. 예나 지금이나 난 막내인 것이 좋다. 다른 집 막내는 맛있고 좋은 것 다 뺏겨서 싫다고 투덜거리지만 난 언니 것을 뺏으면 빼았지 뺏기지는 않는 터라 막내 자리를 무슨 득세한 양 여긴다.
그 막내인 나의 방패가 돼주시던 엄마는 이제 연로해 무기력하게 지낸다. 정신이 맑지 못한데 그래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며 보는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한다. 텔레비전? 바보상자 아닌가. 생각을 안 하니까 치매가 오는 것이다.
내가 막내의 특권을 더 오래도록 누리게 부모님이 장수하시는 사실에 감사한다. 다들 남의 일, 특히 남의 죽음에 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당한 어려움과 기쁨,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만 심각할 따름이다. 내가 부모님의 죽음을 더 어린 나이에 겪지 않고 인생사를 담담하게 생각하게 된 지금까지 장수하시는 것이 너무도 다행이다.
아직까지도 부모님 품안에서 지내는 막내인 나. 이제 그 품안에서 놓여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목젖이 뭉클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