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생명에 대한 예의

2004-02-2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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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주부>

한 십년 전쯤에 서울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마을에 아주 오래된 나무가 있었다. 워낙 오래 되고 큰 나무인지라 대대로 마을에서 당산나무 역할을 해왔었는데 그 지역이 개발되면서 나무의 운명도 위태롭게 되었다. 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는 개발업자와 나무를 지키려는 주민 사이에 싸움이 벌여졌다. 마을 주님들은 나무가 서울시 지정목이 되면 혹 나무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러 인근의 임학대학 교수를 모셔다가 나무의 정확한 연수와 수종을 조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 나무의 나이테를 재려고 나무에 구멍을 뚫는 중에 붉은 물이 배어 나온 것이다. 그걸 본 마을 사람들은 나무가 워낙 신령해서 사람의 피처럼 붉은 피가 새어나온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말 그게 나무가 흘린 붉은 피였을까? 나중에 성분 조사를 해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개발업자들이 나무의 뿌리를 죽이려고 마을 주민 몰래 나무에 주사한 농약이었다. 농약 성분이 물관을 통해서 뿌리에서 줄기로 이동되었던 것이 나이테를 조사할 때 나온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식목일을 맞아 전국에 나무심기가 펼쳐졌다. 어느 노 작가가 자신이 살던 마을 뒷산에 심겨진 묘목들이 며칠도 못 가서 쉬이 죽어버리자 이상한 생각에 나무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나무들이 묘목 장에서 옮겨올 때 흙 떨어지지 말라고 뿌리를 덮어놓은 비닐 채 그대로 심겨있더란다. 나무심기로 하루 일당을 받은 일꾼들이 일당 값하느라고 나무를 심기만 했지 나무가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나는데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 인간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백년을 넘기기도 쉽지 않은 생명체이다. 하지만 브리스톨 콘 소나무 같은 나무는 사막 같은 고산지대에서 오천 년을 넘게 살아왔다. 오천 년이라면 어떤 세월인가? 단군할아버지때로 올라가는 아득한 시간이다.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름 값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우리들보다 먼저 생명을 지켜온 나무들, 식물들, 동물들 더 나아가선 지구상 모든 생명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할 것이다. 그게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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