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맛
2004-02-19 (목) 12:00:00
김현희<주부>
내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만큼 요리를 할 줄 안다면 ‘장금’이 만큼 음식을 잘 할 거란 생각이 든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얼마나 표 안 나게 많이 먹는 지 알 수 없다는 남편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소리소문 없이, 게 눈 감추듯이 맛있게 먹는 재주가 나에겐 있다. 가끔 남편은 돌솥 우동하나 사준 덕에 나랑 결혼할 수 있었다고 얘기 할 때가 있는데 그 말이 틀린 말 같지가 않다. 지금 생각에도 그 때 광화문 뒷골목에서 먹은 우동은 특별한 데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맛을 찾다보니 남들보다 요리 책이 적은 것도 아닌데, 요리 책에 자꾸만 욕심을 내고, 신문 보듯이 하루에 한 번씩은 요리 책을 본다. 요리 책을 들여다보면서 ‘맛을 그리는 일’은 정말 쏠쏠한 재미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전라도 요리를 머릿속에 한 상 차려 봤다가, 보기 좋고 깔끔한 서울 음식으로 상을 갈고, 지난 여름에 먹었던 개성요리의 그윽한 맛으로 상을 또 한 번 갈아엎는다. 비라도 올라치면 인사동에서 먹었던 항아리 수제비가 동동 떠다니고 그에 질세라 일본식 냄비우동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간다.
이런 나에게 ‘대장금’이란 드라마는 정말 황홀경을 선사했다. 그 호사스런 수라상에 슬며시 젓가락을 갖다대고픈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임금 역을 맡은 배우가 얼마나 부럽던지, 누가 기미상궁(음식에 독이 있나 없나 임금보다 먼저 먹어보는 상궁)역 안 시켜주나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참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조선왕조가 수명을 다한 지 백년이 다 된 지금까지 누군가가 그 맛을 지켜내고 있다가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서 꽃 피우게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시대의 간극을 메운 그 분들이 있었기에 나 역시 눈으로나마 호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맛을 지켜내는 분들이 이 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에게서 딸로,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전해져 내려오는 유구한 맛의 족보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맛깔스러움이 채워지는 것이다. 나는 내 딸에게 어떤 맛을 전해 줄 수 있을까? 먹는 재주만큼은 확실히 전해줄 자신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