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 휘(소설가)
엄마, 토요일 오후 어디가야 하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어디 갈 건데?
그때 가서 말씀드리께요.
예, 경숙아 넌 어떻게 할거야?
뭘요?
결혼 말이다. 또 해를 넘기고 말았구나. 너 나이 32이 넘었다.
엄마, 나이 그것이 무슨 필요 있어요. 엄마가 재혼을 해야 제가 편해질 것 같아요.
잘 놀고 있다. 난 결혼해봤고 말 같은 딸도 낳아 기르고 있다.
엄마가 사람을 안 낳고 말을 기르고 있잖아.
저 말하는 것 봐라, 저것이 누구를 닮아 저러나?
엄마, 아빠 딸이죠.
예, 경숙아 거기 앉아봐라.
홍 여사의 음성이 엄숙해진다. 또 무슨 훈시를 할 것 같았다. 경숙은 홍 여사가 무게를 잡고 말을 하면 그 소리가 싫어도 끝까지 다 듣고 있다. 경숙은 저녁 먹은 그릇을 다 씻어놓고 손을 닦으면서 식탁 테이블에 앉는다.
경숙아, 이 어미 모르는 무슨 흉터가 몸에 있니?
엄마, 왜 갑자기 그런 것을 물어봐요?
네가 결혼을 안하고 있으니 그렇지. 우리 병원에 가서 종합진단 한번 받아보자.
엄마, 회사에서 일년에 한번씩 종합검진 받고있으니 그런 걱정은 마세요.
그럼, 왜 결혼 안하고 있나? 네가 생긴 것이 못생겼냐, 미국에서 대학 공부까지
했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무엇이 모자라 그러니.
홍 여사는 딸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찌 하나있는 자식이 이렇게 어미의 속을 썩이고 있을까. 영감이 살아 있었으면 좋은 신랑감을 만나 결혼했을 것인데.’
엄마, 저 아버지 같은 분 있으면 엄마가 반대해도 결혼 할 것이니까 그런 걱정은 저 이불 속에 가만히 넣어 두세요.
저 말하는 것 봐라. 이 늙은 어미 외손자 한번 안아보게 하면 어디 덧 나냐?
홍 여사는 긴 숨을 내쉬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으로 간다. 구부정한 뒷모습을 경숙은 묵묵히 바라본다. ‘엄마가 빨리 재혼을 해야 할 것인데, 더 쓸쓸한 모습이 되기 전에.’ 경숙은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일어나 전기 스위치를 끄고 자기 방으로 간다.
신 선생님, 이 수채화 직접 그린 그림이세요?
네, 마음에 드세요?
배경과 구도도 좋고 색채가 아주 아름다워요.
경숙씨도 그림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림엔 맹물입니다.
맹물이라뇨?
소금물도, 꿀물도 아닌 맹물 모르세요?
그야 물은 알죠?
아무런 맛도 없는. 즉 그림에 관해서 모른다는 뜻이 예요.
네, 그러세요. 그래도 이 그림을 보고 평을 했잖습니까. 언제 한번 이젤을 들고 야외에 함께 갑시다.
그냥 따라 가면 안 되요?
되죠. 그렇지만 지루해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전 몇 시간이라도 보고 있을 수 있는데.
그럼 언제 한번 같이 가요.
네, 그렇게 해요.
오늘 점심 약속 없으면 저와 같이해요.
오전에 일이 많아 좀 늦어 질 것 같은데요.
기다리죠 뭐.
일월 달의 날씨로선 아주 포근하다. 들판과 산 능선들도 갈색에서 푸른 옷으로 갈아입은 지도 오래 되었다. 점심 시간의 물결이 지난 카페테리어는 조용하다. 신 선생은 창문가로 가 경숙이와 마주보고 앉았다.
경숙씨 이 회사에 들어 온지 얼마나 되었죠? 첫날 들었는데 잊어 버렸습니다.
오 년 되었어요. 그 동안 영업부 있다 이리로 왔죠.
영업부와 연구실은 좀 다른 곳인데.
그래서 삼 년 간 아침저녁으로 공부했죠. 신 선생님은 얼마나 되셨죠?
구 년 되었습니다.
자녀는 몇이세요?
딸 둘이 있죠. 다 결혼해 살고있습니다.
사모님하고 오붓하시겠습니다. 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
그럼 아직 미혼이세요?
결혼할 마음이 아직 안 나네요.
그럼 아버님은?
삼 년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죠. 아직 더 살아 계셨어야 하는데.
경숙은 아버지 생각이 나는지 고개를 창문가로 돌린다. 물 컵을 들어 마신다.
신 선생님. 행복하시겠습니다. 자녀들도 결혼했고 사모님이 이런 모습 보시면 질투하겠습니다.
저가 질투를 하고 있죠.
무슨 말씀이세요?
얘기 엄마는 더 능력 있는 사람 따라 갔네요.
네-.
경숙은 사라다에 눈을 두고 머리를 끄덕거린다. 입가에 쓴웃음도 아닌 이상야릇한 미소를 짖고 있다. 경숙이 엄마의 소원을 풀어줄 수 있을까? 신 선생은 경숙을 가만히 쳐다본다. 미혼. 성격도 명랑하고 미모도 저 정도면 어디가도 빠지지는 않겠다. 나이 차이가 좀 있는 것 같다. 사랑에 나이가 문제일까. 경숙도 신 선생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이 보인다. 신 선생이 좀더 적극적인 사랑의 공세를 취하면 불가능은 없을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는 말도 있는데.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옷 입고 아주 멋있게 해야 되.
어디 가는 것인데 이렇게 성화야. 그냥 이렇게 가면 안 되.
사람 만나려 가면서 그렇게 가.
너 결혼할 사람 소개받으려 가는 것이니?
엄마 그런 것 아니니까 하여튼 예쁘게 해.
홍 여사는 딸의 재촉에 허둥지둥 준비를 하고 집을 나셨다. ‘이제 한 남자를 만나는 구나 이제 죽어도 눈을 감고 가겠구나.’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홍 여사는 고개를 차 시트에 젖힌다. 경숙은 먼저 가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서둘러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는 와 있지 않았다. 잠시 후 얼굴에 밝은 웃음을 띠고 경숙이 있는 테이블로 걸어온다.
신 선생님. 이리 앉으세요. 저의 어머님이세요.
네 안녕 하세요. 일찍 나오셨습니다.
홍 여사는 신 선생을 빤히 쳐다본다. 내 딸 경숙이가 어찌 저런 나이들은 남자와 결혼하려고 할까. 홍 여사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신 선생의 거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다.
신 선생님. 두 분이 재미있는 시간을 가지세요. 다음 만날 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두 사람은 호랑이한테 놀란 토기 눈처럼 서로의 표정을 보고 있다. 경숙은 두 사람을 향해 허리를 굽히면서 말을 한다.
엄마, 재미있는 시간 가지세요. 신 선생님 조금 전 제가 한 말씀 꼭 실천해 주세요.
경숙은 손을 흔들어 주고는 급히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