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름이 뭐 길래

2004-02-1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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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덕 <주부>

5년을 기다리던 아기가 생기자 마자 돌림자 중 좋은 이름들이 다 없어질까 봐 미리 맡아 놓고 기다리신 부모님은 왜 내가 딸 일거란 생각을 못 하셨을까? 아무튼 나는 남자 이름으로 지어졌고 그 때문에 어릴 적에는 놀림도 받았고 별명도 많았으며, 여자 다운 구석 이라곤 없이 선 머슴 같은 것도 다 이름 때문이라고 불평 해왔다. 나를 모르는 장소에서 호명 될 때 ~군 이라고 불려져 멋 적게 일어나는 모습이 곧잘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기도 하더니 끝내는 군대 영장까지 나와서 가족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이 기 막힌 영장 사건은 동창회 때 마다 재미있는 화제를 이어가는 촉매 역할로 두고두고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게다가 소녀들이 좋아 할 만한 성당의 많은 영세 명중에 왜 하필 나는 발바라 인지. 이름이 불려질 때 마다 애들이 웃고, 놀리는 바람에 얼마나 성당에 가기 싫었는지 모른다.

개신교로 개종하면서 발바라 에서 해방되었으나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는 이름으로 인한 고민이 더욱 심각했었다. 만일 사랑을 하게 되면 분위기 나게 이름이 불러져야 될 텐데 도대체 누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를 기분이 나겠는가. 꿈 같은 연애는 커녕 남자 친구 한번 사귀지도 못하고 아까운 청춘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 절망(?)하기도 했었다. 기회만 있으면 이름을 바꾸고 싶어서 예쁘고 매력 있는 이름을 쭉 지어 놓고는 혼자 불러 보곤 했다. 한문으로 써 봐도 아니고, 영어로 싸인 을 만들어 봐도 멋이 없어서 나는 절대 유명한 음악가가 될 수 없노라고 부모님께 협박 아닌 협박까지 했었다. 오죽하면 처음 만난 남자가 이름이 좋다는 말에 감격해서 마음 문이 활짝 열리더니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을까.


알고 보니 그도 나만큼이나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했던 터이라 이름에 관한 한 우리는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 해주며 가까워졌다. 우리 이름이 뜻은 좋다고 서로를 위로해 주었지만 그래도 자식 만큼은 놀림 받지 않을 편한 이름,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지어 주어야 된다고 약속 했었다. 이 약속으로 인해 연애 시절부터 아이를 낳을 때 까지 수도 없이 많은 이름을 지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길 부모와 똑 같은 5년의 세월이 지난 후 낳은 아이에게 원 없이 좋은 이름을 지어 주었고 나름대로 한이 풀렸는지 이름 짓기가 끝났는데 진짜 우리의 이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 밤부터 우리는 서로 이름 지어주느라 밤 새는 줄 몰랐다.

성경에 나오는 이름, 꽃 이름, 소설의 주인공, 심지어는 영화배우 이름까지 쭉 지어놓고는 목소리를 다듬어 불러도 보고, 그러다 웃고, 그렇게 좋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다 보니 어느덧 이름은 없어져 버리고 미세스 김, 아니면 영민 엄마라고 불리게 되었으니 이제 누구를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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