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책상과 나 그리고 최선생
2004-02-13 (금) 12:00:00
정금순<주부>
가진 것 별로 없어도 / 욕심없이 살았습니다 / 들꽃같은 마음으로 / 바람을 사랑하고 구름을 사랑하며…… / 갖고 싶은것 말하라시면 / 사랑하는 시집 몇 권과 내 마음 널어놓을 / 통나무 책상하나 / 갖고싶은 願이 있습니다.
나는 유난히 책상을 좋아한다. 사무용 넓은 책상도 좋고, 낮고 작은 책상도 좋고, 앉아서 글을 쓰면 좋을 통나무 책상을 갖는 것은 평생 소원쯤 되기도 한다.
결혼 전에는 동생이 “언니는 책상을 좋아하니까 넓은 책상 사가지고 시집가서 혹시 부부싸움 같은 거 하게 되면, 책으로 책상 가운데를 쭉~ 막아놓고 살아라” 고 했었다. 그런데 개척교회 하는 곳으로 시집을 가서 어렵사리 사느라고 넓은 책상은 마음뿐이었다. 그래도 아무리 비좁아도 내 책들 몇 권과 그 동안 썼던 일기장들은 꺼내 놓아야 했기에 화장대를 없애가며 조그마한 책상 하나는 차지하고 살았다. 아이들이 커 가고 남편의 책들이 많으니 어머니께서는 “얘, 네 책상은 좀 치우면 안되겠니?” 하셨지만 나는 “죄송해요 어머니, 그 것마저 치우면 제 존재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안되겠어요” 라고 고집하며 책상을 끌고 이사를 다녔다. 책상만큼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살아가는 최소한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선생은 20여년 전 우리가 서초동에서 개척 교회를 섬기던 때에 교회학교 선생님이었다. 미국으로 시집을 갔다는 것 외엔 서로 잊고 지냈었는데 우리 식구가 이민 온 것을 어찌 알고는 너무도 반가워 하며 소식을 전해왔다. 지금은 플로리다에서 살고 있으며, 처녀 시절에 서초동 교회에서 처음 신앙 생활을 시작했기에 그 첫 정을 잊을 수 없고 그 때가 늘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남아있었다고 하였다. 최선생은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지만 그 당시엔 돌쟁이였던 우리 딸을 기억하고는 딸의 침대를 사주었고 연말이면 푸짐한 선물을 보내왔다. 이제 좀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고 했더니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책상을 자기가 사주면 안되겠냐고 하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그 책상은 인디아 물건인데 검은 갈색이고 표면이 약간 두들 거리며 자연미가 있는 것으로, 내가 2년 동안이나 마켓을 들릴 때마다 둘러보며 갖고 싶어 했던 것이다. 우리는 여덟 명이 앉을 수 있는 그 책상에 함께 모여 성경공부도 하고 차도 마시며 신문도 읽고, 아들은 친구들과 모여 공부를 하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딸이 99센트 스토어에서 돼지 한 마리를 사왔다. “엄마, 우리 함께 동전 모아서 플로리다 이모네 가요.” “그래, 동전 모아 언제쯤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번 해볼까?” 우리는 동전을 모으면서 플로리다를 생각하면 즐겁고 입가엔 웃음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