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잭슨 해프닝

2004-02-0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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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미주본사 논설위원>

“깜짝 놀라서 아이들 얼굴부터 살폈습니다. 정말 당혹스럽더군요”
30대 후반의 가장 C씨가 지난 일요일 초등학생인 두 아들을 데리고 수퍼보울을 시청하다 경험한 일이다. 문제의 장면은 하프 타임 공연 중 가수 재닛 잭슨의 오른쪽 젖가슴이 노출되던 순간.
“모처럼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가지려고 피자도 시켜놓고 재미있게 게임을 시청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이상한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TV가 너무 야한 장면들을 마구 내보내니 이젠 어느 시간대에도 안심을 할 수가 없어요”
하프타임 쇼가 방영될 당시 시청자는 줄잡아 9,200만명. 그중 2살에서 11살짜리 어린 시청자가 780만명에 달했다니 미전국의 수백만 가정에서 부모들이 비슷한 당혹감에 빠졌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 부모들을 비롯한 수많은 시청자들의 항의 전화로 CBS의 전화선이 마비될 지경이고, 당사자인 재닛 잭슨의 웹사이트에도 성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수퍼보울 방송사인 CBS, 하프타임 쇼 제작사인 MTV측이 즉각 사과 를 하고 나섰지만 사태는 쉽게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선 사건이 사건인 만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 입으로는 비난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즐기는 이상심리가 작용하는 데다 이번 사건이 과연 순수한 사고였는 지 여부를 두고 여전히 말이 많다.
무대에서 같이 공연하던 중 재닛의 옷을 잡아뜯은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옷이 부실해서 생긴 사고라고 해명하지만 단순 사고로 보기에는 미심쩍은 측면들이 있다. 우선 쇼에 앞서 MTV나 안무가가 ‘쇼킹한 순간’을 약속한데다, 노래 가사가 하필 “이 노래가 끝날 때면 너를 발가벗기고 말거야”로 끝날 때에 맞춰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재닛이 착용했던 유두 장식도 고의성의 심증을 굳히는 증거물. 순은제품의 유두 장식은 짝 달라붙는 옷을 입고 춤출 때는 보통 착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장신구 전문가들의 말. 그런데도 재닛이 굳이 유두 장식을 하고 나온 것은 장식을 보여줄 순간에 미리 대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전국의 수천만 시청자 앞에 젖가슴을 드러내는 민망한 행동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번 사건을 일회성 해프닝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들이 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튀어서 관심을 끌고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 팽배한 결과라는 것이다. 옳고 그름에는 무신경하고 재미에만 치중하는 대중의 도덕적 불감증도 물론 한몫을 한다. 이러다가는 수치심이라는 게 퇴화할 날도 머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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