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숙<수필가>
제 깐엔 공들여 차려놓은 거니 애써 달게 먹고자 했다. 녀석의 말을 빌자면 굳이 여자친구와 데이트도 포기한 채 아버지 저녁식사 때문에 일찍 들어온 거란다. 하지만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 그리고 또 다시 저녁까지 내리 사골국물이니 이제 코에서 누린내가 다 날 지경이다.
몇 술 뜨다가 슬그머니 수저를 내려놓자 녀석이 노골적으로 인상을 썼다.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좀 참고 드세요. 출장 떠나기 전날 밤까지 엄마가 잠도 설쳐가면서 끓여놓으신 거잖아요.
내가 생각해도 인간 김병수 성질 다 죽었다. 순간적으로 핏대가 오르는 걸 참 용케도 참았다. 하기야 아들놈들이 내 키를 훌쩍 넘기면서부터는 어릴 때처럼 손찌검은커녕 고함 한 번 치기도 망설여졌다. 자칫 아비로서 망신살 뻗치는 하극상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어째서 우리집 자식들은 모두 제 엄마만 싸고도는가. 군대 간 큰 녀석도 제 엄마 편들기가 작은놈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았다. 심지어 입대하는 날조차 내게 엄마 잘 챙기라는 부탁을 하고 떠났으니까.
일단 방으로 들어와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마침내 화는 좀 가라앉았지만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따지고 보면 비록 재벌그룹은 아니더라도 꽤 인지도 있는 회사에서 지금까지 20여 년을 굳건히 자리 지켜온 내가 아닌가. 사실 내가 언제 식구들 밥을 한 번 굶겼나, 아니면 숨어서 딴 살림을 차려봤나...
물론 살면서 전혀 굴곡이 없었던 건 아니다. 몇 년 전 증권열풍이 한창일 때 전문지식도 없이 달려들었다 적지 않은 목돈을 축낸 적도 있다. 사실 내가 버는 걸로는 네 식구 근근히 생활하고 아이들 교육비 쓰고 나면 그만이었다. 솔직히 말해 내가 날린 그 돈은 마누라 10여 년 품삯이나 마찬가지였다.
결혼 초 연년생으로 아이들이 태어나자 경제적으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꼭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은근히 아내를 돈벌이에 내몰았다. 그때 내 주변엔 재테크에 능한 아내 덕에 벌써 탄탄히 기반을 잡은 친구들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처음 아내는 애들 때문에 영 내켜하지 않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지 않던가. 아무튼지 아내는 식품영양학 전공을 살려 동네 입구에 조그만 빵집을 차렸다. 그리고 근처에 무슨 블란서식 이름을 딴 대형 빵가게가 들어설 때까지 꼬박 13년을 그 가게에 매달려 살았다.
또 이쯤에서 그 동안 내가 그리 자상한 남편과 아버지가 못 됐던 것도 일부 인정한다. 이를테면 가족여행만 해도 그렇다. 나야 주말이면 직장을 쉬니 상관없지만 애들 엄마가 바빠 여행은 꿈도 못 꿔봤다. 토요일은 매상이 좋으니 늦도록 가게문을 닫을 수 없고 일요일엔 밀린 집안 일을 처리하느라 또 바빴으니까.
그렇다고 여자도 아닌 남자가 어떻게 집에서 애만 보고 있나. 직장 내 산악회며 낚시 동호회에 끼어 부지런 좀 떨었다. 사실 주말에 스트레스 해소를 잘해야지 또 살벌한 전쟁터에 나가 콧김 나게 싸울 게 아닌가. 따지고 보면 매일 여기저기가 쑤신다는 아내와는 달리 평소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내가 지금껏 건강한 건 다 그 덕분인지 모른다.
물론 그렇게 남녀가 어울려 취미활동을 하자면 자연히 한눈 파는 일도 가끔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가정을 깨려는 의도는 정말이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냥 잠시 스치는 바람 같은 거였지. 사내란 원래가 다 그런 거 아닌가 말이다.
생각해보면 공교롭게도 몇 해전 내가 골프를 시작한 시기가 아내의 재취업과 맞물렸던 게 조금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고 이제 나이도 있는데 언제까지 젊은애들과 어울려 산에서 야호나 외쳐대나. 당시 가게를 정리한 아내는 몇 개월을 쉬고는 곧장 요리강사로 재취업을 했다. 그러나 말이 요리강사지 실제로는 주방용품회사의 판매원에 가까웠다. 툭하면 지방으로 출장을 나가 순진한 시골여자들 모아놓고 당사의 주방기구로 즉석요리 실습을 하는 게 그녀의 일이니까.
나도 안다, 그녀의 삶이 고단하다는 건. 그렇기는 해도 허구헌날 여기저기 아프다는 데는 솔직히 좀 짜증이 난다. 아프면 의사를 찾아야지 가라는 병원은 안가고 왜 맨날 내게 하소연인가. 야박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사실 제 몸은 제가 알아서 챙겨야 하는 것 아닌가.
그나저나 이제 TV 뉴스 좀 보고싶은데 아들녀석과 거실에 함께 앉아있기가 영 껄끄럽다. 에이, 이참에 손톱이나 깍아야지. 그런데 이 집은 도대체 손톱깍이를 어디다 두고 쓰나. 새삼 평소 손톱깍이며 기타 소소한 것들을 챙겨주던 아내가 아쉽다.
이리저리 화장대서랍을 뒤지는데 아내의 손때 묻은 가계부 밑에 낯선 노트 한 권이 눈에 띄었다. 꼭 구멍가게 외상장부 같이 생겼지만 설마 아내에게 사채놀이를 할만한 큰돈은 없을 테고 아마도 일기가 아닐까싶다.
예의가 아닌 줄은 알지만 부부사인데 뭐... 허겁지겁 열어보니 처음 몇 줄을 빼고는 아직은 텅 빈 새 노트일 뿐이다.
억울해... 윤회는 반드시 있어야한다... 이생의 화두는 ‘체념’, 내생의 화두는 ‘환희’...
첫 장에 또박또박 힘주어 눌러쓴 아내의 글씨가 냅다 뒤통수를 쳤다.
결혼생활 24년, 그 시간이 아내에겐 그렇게도 힘들었었나? 지난 세월, 우리는 각자가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꽤 충실히 감당해오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줄곧 아내를 사랑한다고 믿고 살았다. 그렇다면 아내는 과연 남편인 나를 사랑하기나 한 걸까?
아버지, 외할머니 전화 받으세요. 아들의 노크소리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김서방, 이제 한시름 놓았지? 그래도 내일 현식에미 올라오면 서둘러 수술 날짜 잡아. 악성은 아니라도 혹이 더 크기 전에 떼어내는 게 좋다고 의사가 그랬대잖아. 혹시 걔가 급할 것 없다고 미적거릴까봐 내가 애가 타서 그래.
인간 김병수, 갑자기 못 견디게 아내가 그립다. 맥없이 그녀의 일기만 쓰다듬다 마침내 붉은 펜으로 ‘체념’ 과 ‘환희’ 위에 두 줄을 긋는다. 그리고는 이생의 화두는 ‘사랑’, 내생의 화두는 ‘재회’로 고쳐 적었다.
큰아이 대학입학식 때 찍은 가족사진, 사진 속 아내가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