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꽁트> 빗 길

2004-01-2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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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 휘(소설가)

여보, 빨리 가요.
언제나 어디 갈 때면 내가 먼저 차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완전 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부부는 살아봐야 서로를 안다고 한 말이 헛말은 아니 것 같았다. 한 이불 속에서 생활 한지도 30여 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여보, 우리 내일 가을 풍경 보려가요.
이 지역에 그런 곳이 있나? 작년에 가본 Napa 지역도 별것 아니던데.
여보, 내가 얼마 전 신문에서 봤는데. 가을 풍경은 북쪽으로 우겨진 숲 속을 가면 가을을 느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 우리도 그렇게 한번 해봐요.
당신, 갑자기 시인이 된 것 같아.

사람은 자연 앞에서 누구나 다 시인이 되는 것 아니 예요?
그런데 당신 멀리 드라이브하는 것 좋아하지 않잖아.
그동안 사느라고 그랬죠. 내일 아침 먹고 떠나요. 당신 지도보고 잘 찾아가잖아요. 북쪽으로 찾아봐요. 애들도 없는데.
내일 빅 게임 풋볼 봐야하는데. 내일 아침에 딴 소리하지 말아요.
나는 책상 서랍에서 Bay and Mountain Section 지도를 내어 카펫 위에 짝 폈다. 골든 케이트 다리를 지나면서 잿빛 구름은 산을 넘어와 점점 짙어져 가고 있었다. 차는 101번 도로 북쪽으로 달렸다. 아내는 어린애처럼 차 창문 밖으로 전개되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고 멋있다고 했다.
저 장식들 불이 켜지면 참 아름답겠다. 여보, 우리 밤에 한번 와요.
날씨는 더욱 짙어 지면서 겨울을 알리는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저쪽 산밑으로 햇빛이 나 푸른 나무 잎들은 더욱 빛나 보였다. 도시를 점점 벗어나자 여기저기서 노란 색으로 변화된 잎들을 볼 수 있었다. 비가 오고 나면 나무들은 더욱 노란색과 붉은 색의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그렇게 잠시 자기의 멋을 자랑하다 흙으로 떨어져 자기들의 본향으로 돌아가겠지. 차는 국도를 벗어나 산 속으로 가는 175번 길로 들어섰다. 길이 좁아지면서 알지 못하는 나무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단풍나무들이 노란 색으로 변화된 잎들이 떨어져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아! 낙엽이 떨어진다. 저런 모습을 얼마 만에 보나.
아내는 차 유리문을 내리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잡을 듯이 손을 길게 뻗는다. 저렇게 자연 속으로 흡수되어 가는 모습을 나는 처음 본다. 내가 이런 곳으로 안내를 안 했나? 아내가 관심을 안 나타내었나? 운전을 하고있는 나도 기뻤다. 나도 차 유리문을 내리고 한 손을 길에 뻗어봤다. 산 속의 찬 공기와 가랑비가 손에 닫는 촉감은 상쾌하고 온몸을 짜릿하게 해 주었다.
여보, 가을은 내가 느끼고 있으니 당신은 운전이나 잘 해요.
그래 실컷 봐.
그런데 여보, 어찌 노란색은 많은데 붉은 단풍잎은 왜 보이지 않죠?
가서 물어봐. 왜 그런지.
누구 한데요?
창조주한테. 여름에 비가 안 와 그렇겠지.
늦가을 비는 하늘을 벗어나 소나무 잎 사이로 깊숙이 빠져들고 나는 그 위로 달려가고 있다. 차는 점점 높이 올라간다. 비는 오지만 안개도 없고 구름이 높이 떠 있어 그런지 멀리 산 정상들이 바라보인다. 앞에 보이는 산 뒤엔 더 높은 산이 자기의 키를 자랑하고 서 있다. 어떤 산 능선엔 큰 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고, 갈색으로 변화된 잡풀만이 봄을 기다리고 있는 능선도 있었다.

저기 바닷물.
아내가 먼 곳을 가르친다. 뿌연 안개비 사이로 회색 빛깔의 물이 보인다. 차는 Summit Mt 정상에 올랐다. 나는 길 옆 넓은 공간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저 산아래 보이는 호수는 지금 내가 갈려고 하는 Clear Lake 이였다. 우리는 걷자는 말도 없이 걸었다. 나는 사춘기 때 명희와 동래 금강공원을 걷던 생각이 났다. 지금 명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까? 아내도 그 옛날의 연인을 생각하고 있겠지? 이런 공간에서 아름다운 추억이 없다고 하면 얼마나 쓸쓸할까. 아내는 걷다 나의 손을 꼭 잡아 쥔다.
차는 언덕을 내려와 Soda Bay Rd로 들어섰다. 큰 호수를 끼고있는 마을과 높이 솟아있는 Konocti Mt는 사진에서 본 유럽의 한 산 속 호숫가의 마을을 연상케 해 주고 있었다. 호숫가 집엔 배들이 여기저기 정박해 있었다. 계절에 따라 뱃놀이는 여유 있고 즐거운 시간일 것이다. 이 지역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 줄 몰랐다. 호숫가로 자라있는 나무들은 붉은 색깔은 없었지만 노르스름한 잎과 노란 잎, 푸른 잎들이 가을의 풍치를 한층 더 북돋아 주고 있었다. 호수를 끼고 돌다 281번 길을 따라 나는 차를 몰았다. 이 길은 지금까지 온 길보다 좁았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더 했다. 이 골짜기만은 단풍나무가 많고 낙엽들이 길가에 수북히 쌓여 있었다. 가랑비는 떨어지는 낙엽을 사뿐히 적시고 있었다. 나는 차를 길옆으로 세웠다.
우리 이 길을 한번 걸어봐요?
그래요, 우산 있죠?

나는 우산을 펴들고 아내가 있는 쪽으로 갔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받는 소리는 없었다. 우산을 받쳐들고 낙엽 위를 걸었다. 나는 오랫동안 남을 그림 한 장을 하얀 종이 위에 그린색깔로 그려나갔다.
시몬, 나무잎새 저 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이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은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은 소리가.
우린 숲 속을 거닐면서 ‘구르몽’의 시를 낭송했다. 아내한테서 이런 순수한 면이 있는 줄 몰랐다. 가랑비가 내리고 낙엽이 떨어지는 오솔길에서 나는 아내를 꼭 안아 주었다.
금년엔 가을도 맞이했고, 가을도 느껴봤고 사랑하는 아내와 새로운 추억도 하나 만들어보고 정말 멋있는 가을의 빗길 이였소.
미국에서 처음 느낀 가을 빗길 이네요.
차는 숲 속을 벗어나 Napa 타운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차를 그라지 앞에 파킹하고 시동을 껐다.
오늘 그냥 집에 있었으면 기름 값 안 쓰고, 내일을 위해 잠을 푹 자두는 것인데.
아내는 야멸찬 말을 내어 뱉고는 급히 집안으로 걸어간다. 여자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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