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성난 얼굴인가

2004-01-16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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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가 커버스토리로 다룬 인물이다. 까딱하면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를 잘 모른다.
제임스 딘. 올드 팬들은 금방 안다. 하워드 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잘 모른다. 69%의 미국인이 그렇다고 한다. 타임과 CNN 여론조사 결과다.
하긴 1년 전만 해도 완전히 무명이었다. 대선 레이스 출발점인 아이오와 코커스를 눈앞에 둔 현 시점에서 온 미국은 그런데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워드 딘은 누구인가.
성난 예언자. 타임지가 붙여준 이름이다. 모든 게 분노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리고 기득권 층에 대한 저항으로 일관돼 있다.
이라크전이 미국의 눈부신 승리로 끝났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승리의 영광에 둘러싸인 대통령을 공격해 보아야 득이 될 게 없어서다.
이 때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부시는 엉터리, 이라크 전쟁은 사기다.” 일부 사람들에게 마치 예언처럼 들렸다. 그들의 반(反)부시 정서에 증오의 불을 붙였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의 행방은 묘연하다.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는다. 미군 병사가 매일같이 죽는다. 예언은 맞은 것 같다. 딘의 인기는 치솟았다. 단연 선두주자다.
사람이, 돈이 몰린다. 캠페인이 활발히 전개된다. 그 방법이 혁신적이다. 모든 게 인터넷을 통해서 이루어져서다. 딘의 성난 얼굴이 인터넷 세대, 젊은 아웃사이더들을 자극한 것이다.
한가지 메시지가 그리고 줄곧 전해졌다. 반(反)기득권층 메시지다. 분노의 정치, 저항의 정치. 인터넷을 통한 반란의 정치가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것 같다.
후회막급이다. 예선 날짜를 가급적 앞으로 당겨 일찌감치 후보를 결정짓고 승리를 쟁취한다는 전략이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는 게 아닐까. 민주당 지도부가 요즘 내비치는 심정이다.
증오의 정치, 반란의 정치가 부머랭이 되고 있다. 그 맞바람은 사담 후세인 생포 이후 특히 거세졌다. 부시 때리기가 역효과를 내고 있다. 거기다가 잇단 실언이다. 그래도 계속 공격성 발언이다. 결과는 자승자박이다.
“사담 후세인 체포가 미국의 안전에 도움을 가져온다고 보지 않는다.” 사방에서 비난이다. 남부 바이블 벨트지역의 표밭을 의식해 ‘본-어게인’을 흉내냈다. 웃긴다는 반응이다. 망신만 했다.
“부시는 9.11 사태 전에 사우디로부터 테러관련 정보를 받았다.” 확인도 안 된 겁나는 말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자신이 민주당 후보로 뽑히지 않으면 자신의 지지자들은 11월 본선에 아예 등을 돌릴 것이다.
민주 당내에서도 소요가 따른다. 선거 캠페인의 달인으로 알려진 제임스 카빌도 마침내 이런 평을 하기에 이르렀다. “광우병 아닌 광구병(mad mouth disease)이라도 걸린 것 같다.”
딘 추종그룹은 그래도 여전히 열광적이다. 거친 말을 순발력의 발로로 본다. 단점은 오히려 장점으로 비쳐진다. 항상 성난 얼굴. ‘미국인들은 성난 얼굴의 대통령을 원치 않는다’-. 이 경고에도 오불관언이다. 딘과 함께 증오의 정치, 인터넷 정치의 혁신을 꿈꾸면서.
그 꿈이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2004년 미국 대선 레이스의 중요 관전 포인트의 하나다.
성난 얼굴은 그런데 뭔가를 연상시킨다. 하회탈의 웃는 얼굴이 아닌, 노무현 대통령의 성난 얼굴이다. 그리고 그 성난 얼굴에는 ‘386’으로 상징되는 청와대 측근의 뻘겋게 상기된 얼굴이 겹쳐지는 느낌이다.
몹시 화가 난 것 같다. 쓸개빠진 숭미주의자 같으니라고. 미국을 찬양하면서 대통령 폄하 발언이나 하다니. 결국 칼을 빼들었다. 설마. 진짜다.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숭미주의 외교관들의 징계를 공언하고 나섰으니까.
왜 그토록 화가 났나. 권위가 심한 손상을 입어서. 코드가 안 맞아서. 말 그대로 대통령의 외교노선에 걸림돌이 되는 존재들이기 때문인가.
뭔가가 또 있을 텐데. 올해가 총선의 해다. 가만 있자. 그러므로…. 그렇다. 죽기 아니면 살기, 올인의 상황으로 몰고 갈 이슈가 필요하다. 얼마 전의 여론 조사결과가 그 힌트다.
“한국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39%의 한국민이 그렇게 보고 있다. 20대의 58%가 그런 식으로 미국을 인식하고 있다.”
총선 정국을 읽어내는데 중요한 코드 파악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것 같다. 두 글자로 응축된다. 자주(自主)다. 다른 말로 하면 반(反)미다.
그건 그런데 왜 성난 얼굴인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증거다. 낙관적인, 그래서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은 좀처럼 화를 안 낸다. 웃는 얼굴, 여유가 있는 대통령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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