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말기 미국-북베트남 간에 여러 차례의 비밀회담이 진행됐고 우여곡절 끝에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예비합의가 이뤄졌다. 미군이 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남베트남에서는 민족해방 전선과 중도 정당들이 정권을 균점하는 대신 북베트남은 미군 포로를 전원 석방하자는 것이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남베트남의 티우는 미국이 안보를 보장했지만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견을 해소하지 않은 채 평화협정에 조인했고 철군했다. 미군이 철수하자 티우는 미국을 다시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독자적으로 북베트남을 공격했다. 간신히 엮은 평화는 산산조각 났다. 남베트남의 군사력이 북베트남에 못 미쳤지만 미국이 다시 군대를 파병할 상황이 아니었다. 여론이 나빴고 닉슨 행정부는 워터게이트에 휘말려 있었다. 결국 티우 정권은 무릎을 꿇었고 베트남은 공산화됐다.
’베트남 공산화 저지’라는 대의명분 속에 함께 기거했으나 평화조약을 둘러싼 두 정부의 ‘집안 갈등’이 파국을 불러왔다. 외부의 위협이나 압력보다 내부 알력이 ‘재앙’을 가져올 수 있음을 입증한 역사다. 동맹, 나라, 단체 구분할 것 없이 격한 내분에는 견딜 장사가 없다. 동맹이 끊어지고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며 단체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미-남베트남 정부의 불화와 한인회장-이사장의 티격태격은 그 성격이나 파장 등을 고려하면 도저히 견줄 수 없다. 그러나 생각이 달라도 보다 큰 목적을 위해 자신을 비워야 하는 사이란 점에서는 동일하다.
한인회가 며칠 전 한국의 이재민들을 위해 모은 성금을 전달하는 장면에 적지 않은 한인들이 흐뭇해했다. 또한 한인회가 그 동안 몇몇 뜻 있는 일을 해온 점도 긍정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이번에 불거져 나온 회장과 이사장간의 내홍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지금은 회장 당선 무효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상을 당한 유족처럼 침울해 할 것까지는 없지만 자숙하며 조용히 봉사에만 전념해야 할 시기다.
한인회 이사회가 이사장의 ‘재판 후유증’ 발언을 문제삼아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리자 이사장이 이에 불복, 회장과의 동반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 이번 사태의 윤곽이다. 커뮤니티 봉사와 무관한 집안 싸움에 왈가왈부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일에 시시비비를 가릴 정도로 여유 있는 한인사회가 아니다. 왜들 이러나하는 책망을 하는 데도 한인들은 신물이 났다. 한인회가 빨리 제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심정뿐이다.
우선 정관에 없는 ‘정직’ 조치의 임의성은 불씨를 안고 있다. 이미 선례가 있고 ‘제명’시킬 것을 봐주어서 그리했다는 답변도, 정관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다. 또한 이사장이 폐회를 선언하고 자리를 뜬 상황에서 이사장 징계를 결정한 것도 모양새에 흠이 있다.
이사회의 중론이 모아졌다 해도 다시 한번 대화와 타협을 시도했어야 옳았다. 정직 조치와 관련해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회장의 말에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이사장도 당당할 게 없다. 소송이 진행 중인데 민감한 이슈를 놓고 외부에 공개적인 발언을 한 것은 경솔했다. 원심대로 회장 당선 무효 판결이 날 경우를 상정해, 한인회의 걱정거리를 말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당사자인 회장의 귀엔 거슬렸을 것이다.
이사장이 차기 회장자리를 노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괜한 오해를 자초한 셈이다. 재판이 12월15일로 연기됐지만 애당초 오는 22일 예정돼 있었으니 입 조심했어야 마땅했다.
단체를 꾸려나가려면 관용과 절제가 필요하다. 회장과 이사장은 서로에게 관용과 절제의 덕을 보여주어야 한다. 당장 만나 오해를 풀고 사태를 원만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한인회가 완결해야 할 ‘홈웍’이다. 단합을 과시하는 자리를 마련해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잉꼬 부부도 살면서 수 없이 싸운다. 다툼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수습하는 자세다. ‘성숙한 한인회’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길 바란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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