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2의 레이건인가 제2의 데이비스인가

2003-10-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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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예상을 뒤엎고 소환 투표에서 압도적인 표 차로 차기 가주 지사에 당선됐다.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가 과연 국가로 쳐도 경제 규모 세계 5위에 달하는 가주를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진단해 본다.

이번 소환선거는 지난해 12월 열린 한국의 대선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권좌에 오를 것으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막 노동자 출신이 당선된 것도 그렇지만 작년 재선에 성공, 최소 앞으로 4년간은 주지사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안심하다 뒤통수를 맞은 데이비스는 대선 1년 전부터 청와대 입성은 기정사실로 여기고 여유를 부리던 이회창을 연상케 한다.

자기 돈 170만달러를 쏟아 부으며 소환 캠페인에 앞장서다 자동차 절도 전력이 드러나 울면서 출마를 포기한 대럴 아이사는 국민 경선을 제일 먼저 주장하다 결과적으로 물만 먹은 김근태와 닮았고 선거 닷새를 남겨 놓고 스캔들을 터뜨려 슈워제네거를 망신 주려던 LA타임스는 선거 당일까지 사설을 통해 이회창을 지지한 한국의 모 신문과 비슷했다.


그러나 가주에 사는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슈워제네거와 그보다 37년 먼저 역시 배우 출신 공화당원으로 가주 지사의 자리에 오른 로널드 레이건과의 비교다. 일리노이 깡촌 서민 가정에서 태어나 슈워제네거와 마찬가지로 20대에 무일푼인 채 꿈만 안고 캘리포니아로 온 레이건은 그와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많다.

레이건은 가주 지사에 당선되기 전까지 정치 경력이 거의 없는 슈워제네거와는 달리 1947년 36세의 나이로 영화배우 노조위원장에 선출된 이후 1966년 가주 지사에 당선됐을 때까지 20년 가까운 정치 수업을 받아왔다. 레이건이 주지사에 출마했을 당시만도 대다수 정치인들은 그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현직 주지사였던 에드먼드 브라운은 그가 공화당 후보로 나올 경우 당선은 ‘따 놓은 당상’으로 오판, 공화당 예선에서 그를 적극적으로 밀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본 결과는 레이건의 압승이었다.

’작은 정부’와 반공을 신봉한 레이건은 당시로서는 드문 ‘확신 정치인’이었다. 첫 부인인 제인 와이먼과 이혼하게 된 것도 정계 진출을 둘러싼 의견 차이 때문이었다. 1964년에는 미 극우파의 상징 배리 골드워터 대통령 후보지지 연설을 해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런 레이건도 막상 가주 지사에 당선되고 나서는 세금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 정부를 재정파탄에서 구하고 예상보다 엄청나게 큰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취임 첫날 자동차 등록세 인상을 철폐하겠다는 슈워제네거의 공약과 관련, 주목되는 부분이다.

1970년 주지사 재선을 발판으로 백악관 입성을 꿈꾸던 레이건은 1976년 공화당 후보 지명을 놓고 현직 대통령인 포드에게 도전한다. 결과는 아슬아슬한 실패지만 1980년에는 현직인 카터를 물리치고 40대 대통령 당선에 성공한다. 그러나 집권기간에 레이건만큼 많은 욕을 먹은 대통령도 드물다. 당시 연방하원의장이던 팁 오닐은 그는 내가 아는 어떤 대통령보다 아는 것이 없는 인물이라고 혹평했다. 이밖에도 사람 좋은 바보부터 집무 기간 절반은 졸고 있다에서 저런 바보가 내 나라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까지 별의별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가 퇴임한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고 있다. 대대적인 감세를 통해 미국 경제를 살리고 ‘악의 제국’ 소련을 무너뜨리고 냉전을 종식시켰으며 미국인의 자신감을 회복한 위대한 대통령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변변한 학력조차 없던 그가 이같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대인관계, 친화력과 함께 확고한 정치적 소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950년대 할리웃 공산주의자들과의 싸움을 통해 그는 공산주의는 지상에서 사라져야 할 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인 가주 지사 시절부터 그는 소련의 몰락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주장했으며 이로 인해 KGB에 의해 ‘가장 위험한 미국 정치인’으로 분류됐다. 대통령 재임기간 타협을 외친 수많은 보좌관들의 조언을 물리치고 군비 경쟁을 통해 소련을 파탄시킨 것도 이같은 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겉보기에는 레이건과 비슷한 점이 많은 슈워제네거는 과연 그의 뒤를 이어 성공적인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 아직도 일각에서는 그는 데이비스에 대한 반감을 이용해 운 좋게 당선된 기회주의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그의 지지자 말대로 빈털터리 이민자로 미국 땅에 와 할리웃 스타로 성공하고 재산 관리에도 수완을 보이며 명문 케네디가와 결혼한 후 공화당 지도부의 지지를 얻어냈다는 것 자체만도 무시할 수 없는 업적이다.


슈워제네거에 대한 경멸 뒤에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천시도 은연중 배어 있다. 배우를 ‘광대’로 천시한 것은 한국만은 아니다. 근대 사상에 폭넓은 영향을 미친 루소는 거짓 감정과 행동으로 밥을 벌어먹는 배우야말로 가장 천한 직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위선자를 뜻하는 영어 ‘hypocrite’는 원어 그리스 말로 ‘배우’란 뜻이다.

그러나 이런 직업적 편견말고도 그가 성공적인 주정활동을 펴기에는 숱한 장애물이 놓여 있다. 각종 주민 발의안에 의해 용도가 대부분 이미 정해진 예산을 어떻게 요리해 적자를 막느냐도 문제인데다 갑자기 높아진 주민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주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은 사사건건 그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것이며 기회만 있으면 꼬투리를 잡아 그를 소환하려 벼를 것이다.

그는 캠페인 기간에 어떻게 거대한 재정 적자를 메울 것인지 등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은 적이 없다. 그의 정치 철학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유세 기간은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미 최대 주 행정 수반이 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성공적인 정치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는 올바른 소신이며 둘째는 온갖 난관을 뚫고 이를 현실로 만드는 리더십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전임자인 레이건은 그가 두고두고 연구해야 할 롤 모델이다. 과연 그가 이런 난제들을 극복하고 ‘제2의 레이건’이 될 지 당선된 지 1년이 안 돼 소환 당하는 ‘제2의 데이비스’가 될지는 그의 손에 달려 있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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