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존정치에 대한 심판

2003-10-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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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3류 영화가 아니다. 바로 현실이다. 물에 물 탄 듯한 인기 없는 주지사 앞에 할리웃 액션 스타가 나타나 새크라멘토의 부패를 일소하겠다고 나서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 당선자는 휘청거리는 경제, 티격태격하느라 시간을 다 허비하는 주의원들, 그리고 이해집단에 너무 빚이 많은, 그래서 이도 저도 못하는 주지사에 대한 유권자들의 좌절감을 기술적으로 건드렸다.
슈워제네거가 행정 경험이 전무하다든지, 내놓은 공약들에 구체적인 게 없다든지 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막판에 터진 성희롱 잡음도 결과에 영향을 못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소환은 데이비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거만하고, 정책에는 너무 조심스럽고, 기금 모금에만 전념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론 조사를 보면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주의원들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 단지 그들은 손을 댈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방상원 선거 후보로 출연한 1972년 영화 ‘후보’에서 주인공은 선거일 밤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 이젠 뭘 해야 하나?

많은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오늘 아침 잠을 깨면서 아마도 새 주지사에 대한 놀람과 불확실성이 뒤섞여 비슷한 기분에 빠졌을 것이다. 슈워제네거가 유세중 한 말은 일반론들뿐이었다. 기업의 관심에 좀더 수용적인 주정부가 되겠다, 그래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등 이런 저런 말들을 했지만 구체적인 게 없다. 그냥 백지상태일 뿐이다.

캘리포니아 공화당으로 보면 슈워제네거의 당선은 축복이자 교훈이다. 그동안 주 공화당은 너무 보수쪽으로 기울어서 유권자들과 맞지가 않았다. 슈워제네거는 기존 상황을 공격함으로써 당선이 되었지만 그가 제대로 주지사가 되고 안 되고는 양당 주의원들과 얼마나 잘 함께 일을 해나가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30년 전 정치권 아웃사이더이자 배우였던 로널드 레이건이 어떻게 새크라멘토를 꾸려나갔는지를 보면 될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다시 한번 활기찬 2당 정치체제로 들어갔다. 그리고 모든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불안이 극에 달하면 이번 같은 역사적 소환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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