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엔론’ 경보 죽이기

2002-01-15 (화)
크게 작게

▶ 미국의 시각

▶ 허버트/뉴욕타임스 칼럼

’엔론’ 경보 죽이기
엔론사의 최고 경영자(CEO)였던 제프리 스킬링이 취임 6개월만에 뜬금없이 사표를 낸 지난해 8월14일 엔론의 케네스 레이 회장은 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은 회사의 장래가 무척 밝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8월27일 레이는 "투자자의 신뢰를 높이는 것이 나의 최대 목표이며 우리의 성장은 불문가지"라는 이메일을 또 내보냈다.

당시 엔론의 전망은 풍전등화처럼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스킬링과 레이는 자신들이 보유했던 엔론 주식 1억6,000만달러 이상을 매각했다. 그 후 12월2일 엔론은 미국 역사상 망한 최대기업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이때 엔론의 수천여 직원들은 직장을 잃고 은퇴연금을 몽땅 날리게 될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레이 회장의 장밋빛 이메일을 읽었을 것이다.

이들 이메일은 엔론 붕괴를 조사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출신 민주당 연방하원의원 헨리 왝스맨에 의해 지난 주말 공개됐다. 왝스맨은 레이 회장이 두 번째 이메일을 직원들에게 내보낸 시점에 주당 37달러로 자신의 보유주식을 매각했으며 2001년 한해 4,000만달러, 98년 10월 이후 총 1억달러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웠다고 밝혔다.

이메일을 보낸 지 두달만에 레이 회장은 폴 오닐 재무장관, 도널드 에반스 상무장관 등 부시 행정부 각료들과 접촉해 구호를 요청했다. 정부는 엔론의 위기를 인지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누구도 수천여 직원과 무수한 일반 부시 행정부는 레이 회장이 구조요청을 한 것과 엔론 붕괴는 무관하며 정부가 전화를 받고 엔론을 지원하지도 않았으니 요란 떨 것 없다는 입장인 것 같다.


하지만 투자자들에게 이같은 현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쉬쉬했다. 오닐 재무장관은 지난 주말 ‘폭스 뉴스 센데이’에 나와 "당시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기지 않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기업의 흥망성쇠는 흔히 있는 일 아니냐"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 했다.

그러나 엔론은 이미 연방정부로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따냈다. 부시행 정부의 전국 에너지 정책 형성이 입김을 불어넣었으며 상대적으로 일반 소비자나 환경단체들의 입지가 약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엔론은 또 공공이익을 우선시하며 정책활동을 전개하려던 공화·민주 양당의원들을 집중 타겟으로 삼아 소프트 머니를 쏟아 붓는 방법으로 이들의 입장을 돌리도록 엔론의 부당행위는 이루 형언하기 힘들다. 직원들과 일반 투자자들에게 끼친 재정적 피해는 기절할 만한 수준이라고 사건을 조사중인 왝스맨 의원측은 말하고 있다.

엔론은 워싱턴에서 백악관뿐 아니라 의회에서 줄을 대고 있던 회사다. 그 줄이 단단하게 요로에 연결돼 있던 회사다. 엔론이 원했던 것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 은밀하게 접근해 자신의 이익을 대변토록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엔론의 극소수의 경영진이 전 직원과 일반 투자자들을 속이고 자기 배만 불릴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엔론의 기업 행태로 가능했다고 본다. 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