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버드 총장의 수난

2002-01-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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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월스트릿 저널 사설)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 대학 총장이 흑인문제 연구소 책임자를 꾸짖으면서 일어났던 소동은 양쪽이 서로 이해 부족 때문이라고 변명하면서 마무리지어져 가는 듯 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오해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양쪽이 모두 상대방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흑인문제 연구소 측은 서머스가 역대 총장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먼저 간파했다. 서머스도 정치적 곤경을 피하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인종문제에 립 서비스를 늘어놓던 과거 총장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그는 9·11 테러 이후 행한 연설에서 군대에 대한 강한 지지를 촉구하고 하버드가 인종과 신앙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능력만 있으면 돈이 있건 없건 누구에게나 공평한 학업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이것이 불씨가 된 것이다.

흑인학과의 코넬 웨스트 교수가 서머스 총장이 지난 10월 자신을 불러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면서 사건은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서머스 총장은 웨스트 교수에게 좀 더 학술적인 논문을 쓰고 학점을 너무 후하게 주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흑인학과 교수들은 프린스턴으로 자리를 옮기겠다고 위협했으며 제시 잭슨 목사는 하버드의 인종정책에 우려를 표시하며 캠브리지까지 왔다.

문제가 커지자 서머스는 다양성을 존중하겠다고 말했으나 끝까지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상아탑에서 평생을 보낸 인물 대신 현실 문제에 매일 부닥치는 실무자 출신 총장을 데려왔기 때문이다. 종전까지는 인종과 성에 관한 사고방식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만 총장이 됐었다. 서머스가 끝까지 학부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소신을 지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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