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리안 크리스마스 선물

2001-12-27 (목)
크게 작게
코리안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시즌이다. 매년 12월 이맘때쯤이면 한인들이 모이는 파티에 갔다가 돌아올 때 다음 네 가지 중에 한가지 선물을 받아들고 집에 온다. 달력이나 책, 커피 컵 또는 CD 같은 선물을 받아 가지고 온다. 이러한 물건들이 일상에 유용한 것들이지만 너무 많았을 때는 그렇지도 않다.

공짜 선물들은 어김없이 선물을 주는 사람의 사업체나 자신을 은근히 홍보하기 위한 광고용 선물이다. 이러한 광고 효과를 위해 한국 사람들은 슬그머니 연말연시를 잘도 이용한다.

우리 부부가 올해 받은 달력만 해도 아마 열개는 넘을 것이다. 꽃집, 부동산 소개소, 교회, 식품점, 신문사, 은행, 결혼상담소 등 많은 곳에서 달력을 선물로 주었다. 냉장고에 붙이는 작은 달력, 수첩용 달력, 책상용 달력, 벽에 붙이는 달력, 모양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달력 몇 개를 고른 후 한국사람이 아닌 다른 친구들에게 나머지를 선물로 준다. 그들은 친절하게 선전하는 한국말로 된 광고를 읽지 못하기 때문에 광고용 캘린더라는 것을 모른다.


책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끔 받는다. 어떤 책은 읽지만 어떤 책은 책상 구석에서 먼지만 모으고 있다. 어떤 책은 페이지만 대충 한번 넘겨진 후 서재 구석에서 천대를 받다가 얼마 후에 헌 신문들과 함께 재활용 쓰레기차에 실려나가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책은 아주 사적인 선물이다. 받는 사람의 취향을 잘 알지 못하면 오히려 처치하기에 곤란한 선물이 된다. 근래에 들어 많은 한인들이 자비 출판하여 친지들에게 자기 책을 선물하는 것 같다. 우리 집에도 이러한 책들이 선물로 포장되어 줄줄이 들어오고 있다. 책 역시 슬그머니 자기 홍보용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커피 잔도 좋은 선물이 된다. 물론 이러한 선물에도 주는 사람의 개인 회사 이름이나 로고가 그려져 살그머니 광고용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우리 집 부엌 찬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홍보용으로 선물 받은 커피 잔으로 가득 차있다. 수많은 컵들은 찬장에서 흘러 넘쳐 집안 여기저기에 놓여져 있다. 회사 이름이 새겨진 컵들이 연필통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잡동사니들을 담는 용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가끔 대청소할 때 집안에 넘쳐나는 오래된 컵들을 모아서 구세군에 갖다 주기도 한다. 가끔 아내는 컵을 버리기도 한다. 이가 빠진 컵은 나쁜 운을 가져온다고 하며 버리는데 왜 그러는지 궁금하다.

음악 CD를 선물로 받기도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는 친구로부터 재즈 음악 CD를 받았다. 사실 나는 재즈 스타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 열었던 포장을 조심스럽게 다시 싸서 나의 아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아들이 그 CD를 고맙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아내도 제자로부터 포크송 여가수 제니스 조프린 CD를 받았다 한다. 아마 그 학생은 제니스의 열광적인 팬인지 모른다. 세상사람들 모두가 그녀처럼 제니스의 음악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한 선물일 것이다(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 제니스 조플린 CD를 공짜로 갖고 싶은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며칠 전 아내의 한인 친구가 선물로 보내온 CD 음반을 들었다. 아마추어 가수임에 틀림없다. 클래식 음악을 백그라운드 음악으로 하고 가수는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옛날 한국에 있을 때 버스에서 자주 들었던 것 같은 유행가 장단에 맞추어 자기 목소리에 도취하여 멋을 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음반의 주인공에게는 미안하지만 노래부르는 그 사람의 어머니 이외에 누가 이런 음악을 들을까 하고 궁금해하며 미간을 좁히며 음악을 끄는 나를 보고 아내는 자비로 출판한 음반이라고 설명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포장되어 우리 집으로 흘러 들어온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도 다음해 크리스마스에 듀엣으로 음반을 만들어 친지들에게 선물로 돌리자고 아내를 꼬셨다. 자타가 공인하는 음치들인 아내와 나는 "돼지 둘 멱따는 소리"라고 음반 타이틀까지 골라놓고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