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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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매듭

2001-12-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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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7일에 이 글을 쓴다. 일본이 감쪽같이 진주만을 공격한 60주년 기념일이다. 남선교회 조찬 기도모임에 참석하였다. 80 전후의 나이든 멤버들이 60년 전 진주만 공격을 회고하면서 그 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스탠은 교회예배가 끝난 후 집에 돌아와서 라디오 설교를 듣고 있었다. 긴급 뉴스라면서 방송을 중단하고 남자 아나운서가 세상을 흔드는 엄청난 뉴스를 말했다. 대학생이었던 필은 방에서 혼자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의 룸메이트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소식을 전해 주었다.

하와이가 고향인 짐은 학교 기숙사 옆방 친구가 와서 "너의 고향집이 폭격 당했는데 알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짐은 친구의 말을 처음엔 믿지 않았다. 라디오 뉴스를 듣고서야 그가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이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고, 스탠, 필, 그리고 짐의 인생은 진주만 공격으로 영원히 변하였다. 진주만 사건 후 수년이 지난 후에 태어난 나는 그 날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스탠과 필, 그리고 짐에게 12월7일은 그들의 인생의 큰 매듭이 되어 영원히 기억에 남아있다.

진주만 사건 후 22년이 지난 뒤인 1963년 나는 중학생이었다. 11월27일 쉬는 시간에 나는 물을 마시려고 식수대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데 아서라는 아이가 케네디 대통령이 총에 맞았다고 말했다.

물을 마시고 교실로 돌아오자 선생님이 아주 슬픈 표정을 하고 창가에 서 계셨다. 여자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모두 조용히 앉으라고 하였다. 몇분이 지나자 교내 스피커 시스템을 통하여 교장 선생님이 달라스에서 총살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12세이었던 나는 슬픔을 감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업이 취소되어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 텔리비전을 켰을 때 다시 슬퍼졌다. 텔리비전 프로그램은 암살사건 뉴스로 가득 찼었다고 기억한다. 지금도 대화가 그 방향으로 흐르면 자동적으로 그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케네디 암살사건은 나의 인생에 큰 매듭으로 남아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이 있은 뒤 38년 후, 2001년 9월11일 아침에 4대의 비행기가 불기둥 속으로 추락하였다. 테러참사 뉴스를 들으면서 나는 진주만과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을 떠올렸다. 9월11일은 우리들의 의식 속에 또 하나의 큰 매듭으로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이가 든 한인 남자와의 대화 가운데 그의 인생 중 짙게 기억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자기의 어머니의 죽음을 첫 번째로 꼽고, 그 다음은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두 가지 사건을 말하였다.

첫 번째는 8월15일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이라고 말하였다. 일본인들이 하루아침에 눈에 보이지 않아 놀랐다 하였다. 두번째는 6월25일 북한 공산군이 침략하던 날이라고 하였다. 그는 군인이 되려는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 공산당과 싸우는 군인이 되었다 하였다.


그는 진주만 사건에 대한 뉴스를 들었는지 기억을 못하겠지만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사건은 한국에서 뉴스로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하였다. 그렇지만 그 사건은 그에게 별로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왜 사람들은 비극적인 뉴스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일까.

나의 세대에게 11월27일이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처럼, 나의 부모세대에게 12월7일이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나의 아들의 세대에게는 9월11일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케네디 암살 소식을 들었던 그 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누가 나에게 그 소식을 전해 주었는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아들에게 말해 주는 것처럼 나의 아들은 그의 아들에게 미국이 당한 테러 공격을 떠올리면서 그의 세대를 영원히 바꾼 9월11일 참사사건을 이야기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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