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프간의 새 지도자

2001-12-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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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시각

▶ (낸시 스미스/ 월스트릿 저널)

아프가니스탄 임시 정부의 수반으로 선출된 하미드 카자이가 어제 칸다하르에서 위성전화를 내게 걸었다. 피로에 지치고 감기 든 목소리였다. 방금 전 미군의 오폭으로 가장 우수한 휘하 사령관 3명과 20명의 부하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폭탄 때문에 전화한 것은 아니었다. 옛 친구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했다는 것이다. 그는 내 가족의 안부를 물어봤지만 나는 인터뷰하려고 해 그를 실망시켰다. 기자란 그런 직업이다.

요즘 그에 대해 나오는 보도는 내가 15년 동안 알아온 그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를 ‘파슈툰족의 지도자’로 부르고 있지만 그는 항상 아프간인임을 자부하던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압둘 아하드가 99년 파키스탄에서 암살됐을 때 포팔자이족 원로들은 회의를 열고 그를 지도자로 추대했다. 수백명이 그의 집 앞으로 몰려가 비단 터번을 바쳤다.

그는 국제 문제 석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파슈툰어는 물론 이란계 다리어, 파키스탄계 우르드어, 힌두어, 영어, 프랑스에 능통한 사람이다. 그가 왕의 추종자라는 것도 잘못이다.


1957년 12월24일 7남1녀를 둔 가정에서 태어나 칸다하르 인근에서 자랐다. 그의 집은 마당이 넓어 아이들이 말을 타고 다닐 정도였다. 인도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지난 20년간 아프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했다. 3년 전 의사와 결혼한 그는 비틀즈 음악을 좋아한다.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용감한 인물이다. 정직하며 마음이 넓다. 그가 부패와 정실주의가 난무하는 아프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93년 암살범의 습격을 받아 그가 타고 가던 차 운전사가 사망했다. 그 후 범인이 잡히자 보복을 가하라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는 전재산을 소련과의 항쟁에 바쳤다. 볼티모어에 있을 때 행인이 다가와 거짓말로 돈을 잃어버렸다며 집에 갈 차비를 달라고 하자 두 말 없이 지갑을 꺼내줬다. 그가 어렸을 때 온갖 동네 거지와 알고 다녔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13세밖에 안됐지만 거지들이 돈을 달라면 아낌없이 줬다. 돈을 줬을 뿐 아니라 그들과 친구가 됐다. 그는 이제 근심걱정으로 지친 성인이 됐다. 그가 옛날처럼 거지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즐겁게 카불 거리를 걷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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