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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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파의 득세

2001-11-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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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에드워드 러트웍/ LA타임스)

부시 행정부 출범 초기부터 일부 국방부 관리들은 사담 후세인을 가급적 빨리 제거하는 것이 화급하다는 주장을 폈다. 누구도 후세인이 유엔 사찰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대량살상 무기를 제조하기 위해서이며 이라크가 몰래 석유를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강경파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대표격으로 하는 강경파들은 91년 걸프전 때처럼 50만의 대군을 동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대신 요르단과 쿠웨이트에 망명해 있는 반정부 이라크 세력과 쿠르드족을 지원하고 미국 공군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은 이에 반대했다. 사우디 정부가 회교권의 반발을 이유로 결사 반대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쿠르드족의 승리를 우려하는 터키 측의 반대도 큰 이유였다.


파월은 군사적으로도 이라크 망명객들은 무의미하며 쿠르드족도 자체 분열로 후세인의 적수가 못된다는 이유를 내걸었다. 대다수 국방부 관리들은 당시 파월 편을 들었다. 그 때까지 영향력이 별로 없던 럼스펠드 국방장관도 강경파 편을 들지 않았다. 백악관은 어느 쪽 손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토론은 결론 없이 끝났다.

그러나 9·11 테러는 이런 상황을 바꿔놨다. 강경파의 입김이 거세진 것은 물론이다. 납치범의 한 명인 모하메드 아타가 이라크 정보국장과 프라하에서 만난 사실이 확인되자 럼스펠드도 태도를 바꿔 강경파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파월은 이라크 공격에 끝내 회의적이었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반대했다. 파월의 아프간전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지자마자 강경파들은 파월이 99년 코소보 폭격과 걸프전도 처음에는 지상군을 투입해야지 폭격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음을 지적했다.

이제 강경파들은 아프간을 예로 들며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파월이 나토 우방과 중국, 러시아, 그리고 터키와 요르단을 설득하지 않고는 군사행동을 벌일 수 없다. 사우디는 계속 반대하겠지만 테러 이후 미국에서의 그 영향력은 사라진 상태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유엔 사찰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라크가 이를 받아들일 리 없다. 럼스펠드와 파월 중 누구의 끗발이 센 가가 이라크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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