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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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차례는 이라크

2001-11-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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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간전쟁 그후

▶ <민경훈 편집위원>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종반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중동 지역에서 포성이 멎지는 않을 것 같다.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종합해 보면 미국이 다음 타겟으로 이라크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앞으로 이곳의 전운이 어떻게 퍼져 갈지 조망해 본다.


미국을 극도로 증오하는 인물. 화생방 무기를 소유하는 것이 소원인 인물. 테러를 지원한 경력이 있는 인물. 아랍 세계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인물. 오사마 빈 라덴이 우선 떠오르지만 그보다 먼저 미국의 주목을 받아 온 사람이 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다.

9·11 테러와 탄저균 소동이 벌어졌을 때 그의 이름이 미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애써 언급을 회피했다. 월스트릿 저널 같은 신문은 사설을 통해 "이라크가 화생방 무기를 개발해 온 것은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고 이번 테러의 주모자인 모하메드 아타와 접촉한 것도 확인이 됐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따졌을 때도 부시 행정부는 "아직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그러나 지난 주말을 계기로 태도가 달라졌다. 부시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 안보담당 보좌관은 CNN과 가진 인터뷰에서 "사담 후세인이 매우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은 9·11 테러를 떠나서도 분명한 일"이라며 "대량 살상 무기 획득을 고집하고 있는 그는 이라크 국민과 주변 국가, 우리 모두에게 위협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이와 때맞춰 국무부는 19일 "이라크가 세균 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지난 3년간 이라크는 유엔 사찰단의 감시를 피해가며 세균 무기를 개발해왔다는 의혹이 짙다"고 발표했다. 국무부는 "북한도 국가 사업으로 세균 무기 개발과 생산에 전력을 기울여왔다"며 이라크 외에 북한을 비롯, 이란, 리비아, 시리아, 수단 등도 세균 무기 개발국으로 단정했다.

행정부내 온건파로 알려진 콜린 파월 마저 이 달 초 "대량 살상무기 보유를 획책하고 있는 이라크를 좌시하지 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일련의 발언이 나온 시점이다. 테러와 탄저균으로 시끄러울 때는 조용하다 이제 탈레반이 무너지고 빈 라덴 잡기도 시간문제인 상황이 벌어지자 이라크를 겨냥한 발언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처음부터 이라크까지 같이 칠 것 같이 행동하면 반 탈레반 연합전선 구축에 아랍권이 잘 호응하지 않을 것 같고 이라크의 방해공작도 예상되니까 일부러 이라크는 봐 줄 수도 있다는 페인트 모션을 취한 것은 아닐까. 다음 차례가 자기라는 것은 이라크 자신도 눈치채고 있는 것 같다.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부총리는 최근 "우리가 공격받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사담 후세인은 걸프전 이후 계속 미 보수파들의 ‘눈의 가시’ 같은 존재였다. 빈 라덴이 테러 이유로 내걸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미군 주둔과 경제 제재로 인한 이라크 국민들의 고통도 따지고 보면 걸프전 때 사담을 없애지 않고 놔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사담이 9·11 테러와 탄저균 공격에 관련이 있건 없건 가만 놔두면 반드시 일을 저지를 인물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제거해야 한다는 게 보수 세력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라크를 때릴 명분은 얼마든지 있다. 이라크는 우선 걸프전 때 약속인 유엔의 사찰을 3년이나 거부해 왔다. 아직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빈 라덴과 사담과의 관계가 보통 이상으로 친밀했다는 이야기가 간간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방부 관리는 "알 카에다는 일반인의 상상 이상으로 이라크와 잦은 접촉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아직까지는 모두 9·11 테러와 이라크의 관계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시점이 이르렀다고 판단하면 그 동안 모아뒀던 자료가 일제히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은 멀지 않았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90년 8월이지만 쿠웨이트를 해방시킨 ‘사막의 폭풍’ 작전은 91년 1월17일에 시작됐다. 물론 그동안 작전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린 탓도 있지만 사막에서 전쟁을 하는 데는 더운 여름보다는 겨울이 미국에 유리하다는 판단도 개전 시기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산악지대인 아프간에서는 겨울 전쟁이 힘들지 모르지만 사막인 이라크는 이 때가 안성맞춤이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첨단 무기를 동원한 ‘쪽 집게 폭격’과 북부 동맹이란 내부의 지상군의 힘만으로 아프간 국민들에게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탈레반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너뜨렸다. 이라크 내부에는 북부의 쿠르드족과 남부의 시아파들이 후세인이라면 이를 갈고 있다. 해외에는 ‘이라크 민족회의’라는 반정부 단체도 결성돼 있다. 나중에 다시 군대를 모으느니 이미 가 있는 군대를 가지고 아프간 승전의 여세를 몰아치는 것이 경제적이란 생각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권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진다는 것은 탈레반이 이미 보여줬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아랍권은 말보다 힘을 더 알아준다. 아프간 공격 초기 곳곳에서 아랍권 곳곳에서 반미 데모가 일어났지만 대세가 결정되자 반미구호는 쑥 들어가고 결사항전을 부르짖던 탈레반과 알 카에다 내부 균열이 발생, 서로 죽이고 밀고자가 속출하는 등 이전구투의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담 정권도 지금은 철옹성 같지만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붕괴 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빠른 속도로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중동에서 주목해야 할 곳은 이라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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