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불의 재건을 기대한다

2001-11-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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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종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아직 칸다하르등 일부 지역에서 전투가 계속되고 있지만 탈레반의 정치 생명은 끝났으며 알 카에다 소탕도 시간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미 언론이 아프간을 보는 시각을 간추려 소개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들어온 여러 이미지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수염을 깎기 위해 이발소에 앉아 있는 남성들 모습이다.

해방구 주민들이 이발을 하는 것은 서양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제2차 대전 때 독일군이 쫓겨난 지역에는 깎인 머리털이 수북히 쌓였지만 그것은 부역자들의 것이었다. 여성의 경우 삭발은 특히 모욕적이었다. 그러나 아프간 남성들에게는 수염 깎는 것이 해방의 상징처럼 돼 버렸다. 아프간에서는 매끈한 턱이 정치적 선언문인 셈이다.


아프간 해방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감동적이다. 해방된 지역에서는 질서가 문란해지기 쉽다. 1944년 파리를 해방시킨 미군들은 파리 여성들과 환락의 나날을 보냈다. 복수도 이럴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현상이다. 프랑스 인들은 독일군과 동침한 여성들의 머리를 삭발하고 거리로 내몰았다.

아프간 여성들은 카불을 해방시킨 타지크와 우즈베크 전사들에게 몸을 던지지는 않았다. 아프간에서 그런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여성들은 얼굴을 덮은 부르카를 벗어 던짐으로써 자유를 과시했다. 어제 뉴욕타임스에는 아프간 여성의 웃는 사진이 실렸다. 낭만적인 사람이라면 그 사진 한 장만으로 아프간 전의 의미는 있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카불 곳곳에서는 소년들이 연을 날리는 모습도 보였다. 파슈툰 말로 연은 ‘바람 종이’라는 뜻이다. 탈레반이 이 마저 금지하는 바람에 소년들은 지난 6년 간 연을 날리는 기쁨도 누리지 못했다. 봄베이에서 만든 인도 영화 음악에 흥겨워하는 모습도 또 다른 자유의 증거다. 많은 미국 신문들은 아프간 남성들이 인도 영화 스타 포스터 앞에서 모여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미스 유니버스 출신인 아이슈와리아 라이의 사진도 본 것 같다. 이교도인 힌두 여성이 이제 아프간 남성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물론 지금 아프간 해방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정치적 안정을 이룩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해방의 기쁨 뒤에는 다시 혼란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그러나 북부 동맹이 결속을 유지하고 평화가 지속된다면 진짜 해방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해방을 상징하는 것은 기념비다. 지금 변변한 건물 한 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아프간 인들은 한 때 아름다운 도시였던 수도 카불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

툰쿠 바라다라잔/ 월 스트릿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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