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이와 어른

2001-11-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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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이렇습니다

▶ 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

영어가 때로는 혼돈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child’라는 단어를 보자. 만약에 내가 "Children must be quiet in church"라고 말할 때, 청소년, 남자아이, 여자아이, 즉 미성년을 가리키는 말이다. 반면에 내가 당신에게 "Do you have any children?" 하고 묻는다면 미성년인 자녀만이 아니라 성년이 된 자녀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Children should obey their parents"라고 말할 때, ‘children’이 어떠한 의미로 구사되는지 생각하여 보자. 미성년(juvenile)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자녀(offspring)를 의미하는가? 한국말로는 이 문장에서 쓰여진 ‘children’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하다.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문화가 함축되어 있음을 짐작한다.

미국사람들은 "Juveniles(미성년) should obey their parents"라고 해석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Offspring(자녀) should obey their parents" 해석할 것이다. 성인이 된 나의 아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 말의 의미를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스물네살 그리고 스물여섯살 된 그들은 이제는 어린아이들이 아니다. 그러나 부모인 내 눈에는 아직도 아이들로 보일 때가 있어 그들을 성인으로 볼 수 있도록 나의 눈을 훈련시키고 있는 요즈음이다.


부모자식 관계처럼 만족을 주는 인간관계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자녀와 평생 만족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 성인이 된 자녀들을 어린아이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부모들이 성인이 된 자녀를 아이 취급하기에 자녀와의 관계가 친구와의 관계로 진전되지 못하는 것 같다.

성인이 된 자녀와의 이러한 오묘한 관계를 좀더 이해하기 위하여 몇 십년 전에 유행하였던 대중 심리학에서 사용하였던 어휘를 인용하려 한다. 심리학자들은 부모와 자녀 관계를 ‘부모, 아이, 성인’이라는 세가지 단어를 사용하여 정의한다. 부모는 위엄의 상징이며 자녀에게 명령하고,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보스로서의 위치에 선다. 아이는 부모를 필요로 하고 부모에게 속한 위치에 있다. 아이는 학생일 수도 있고 고용인일 수도 있다. 성인은 독립체로서 다른 성인들(부모를 포함)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

성인이 된 나의 아들과 나와의 관계가 ‘부모/자녀’ 관계에서 ‘성인/성인’ 관계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다.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도전을 받는다. 때로는 청년이 된 아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 하고 명령하며 가르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혀를 깨물고 아들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아들에게 제안은 하나 요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들이 대학을 중단하고 가수가 되겠다고 하였을 때 나는 강경하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혀를 열번도 더 깨물었다. 성인이 된 아들을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그가 바른 결정을 자신이 할 수 있도록 코치의 역할을 하려고 애를 썼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한다.

신임하는 친구 사이는 충고하고, 카운슬링하고, 코치하고, 지원하여 주는 그런 사이다. 친구에게 강제로 요구하거나, 위협하거나, 매수하거나, 공갈로 협박한다면 친구 사이가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부모와 성인이 된 자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자녀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한 인간을 꽃 피우기 위하여서는 부모로서 끊임없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처럼 공들여 꽃피운 자녀와 평생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부모/아이 관계가 성인/성인의 관계로 바뀌어져야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노력하려 하는데도 나는 가끔 부모/아이 관계로 돌아가곤 한다. 대화 중에 아들이 "아버지!" 하면서 눈을 아래위로 굴리면서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즉각 "아하, 내가 아들을 아이처럼 내려다보고 있구나" 하고 눈치채고 아들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성인과 성인으로서 대화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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