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손잡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타도를 외치는 북부동맹군의 한 훈련장. 틴에이저 수십명이 거센 모래바람 속에서 교관으로부터 사격지도를 받고 있었다. 40대로 보이는 북부동맹군 소속 병사가 훈련장 한 귀퉁이에서 12세 아들에게 탱크 공격용 로켓포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아들은 오른쪽 어깨에 로켓포를 올려놓은 뒤 오른손으로 받쳤지만 꽤 무거워 보였다.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왼손에 포탄을 잡고 로켓포 앞 구멍에 집어넣으려 했다. 하지만 힘이 달려 로켓포를 받친 어깨가 기울면서 포탄이 장착되지 않았다. 어른이 아니면 두 손을 써야 할 로켓포를 한 손으로 지탱하려니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옆에서 한참 지켜보던 아버지가 자상하게 포탄을 집어 넣어줬다. 겨우 발사준비가 완료됐다.
과연 이 소년이 로켓포를 제대로 쏠 수 있을지, 발사 때 반동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배우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어른이 M16소총을 쏠 때도 방심하면 오른쪽 관자놀이가 멍들 정도로 반동이 센 것을 감안하면, 아버지는 응당 어린 아들의 안전을 걱정할 것이다.
그런데 미디어에 비친 이 아버지는 적어도 겉으로는 근심의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태연했으며 얼굴에 미소를 띠며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아들도 당당히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나는 내 아들이 전쟁터에 나가 알라의 이름으로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값진 삶이 될 것이다." 이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병사가 부족해 어린 아들을 군사 훈련장으로 데리고 왔지만 북부동맹군의 승리에 일조할 수 있다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다. 좋은 집, 좋은 음식, 좋은 교육을 제공하진 못했지만 아들이 자신의 공동체에서 떳떳한 존재가 돼야 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군인 묘지에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주니어’라고 적힌 묘비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했다 숨진 동료 미군들과 함께 묻혀 있는 이 병사는 당시 미국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아들이다.
대통령인 아버지는 아들을 전장에 내보냈다. 아랫사람을 시켜 작전에서 제외시키거나 안전한 보직을 주려하지 않았다. 상당수가 전사할 것이란 예상을 했으면서도 다른 병사들과 대열을 나란히 하도록 했다. 대통령 아버지의 용단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부 한인 아버지들의 부끄러운 모습이 테러와의 전쟁통에 드러나고 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승리를 이끌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지상군을 파병하려는 상황에 이르자 아버지들이 지레 겁을 먹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아버지들은 "우리 아들이 파병되는 게 아니냐" "명단에서 제외시켜 달라"며 안절부절못했다.
모병소에 입대 지원서를 냈다가 전쟁이 터지자 "아들의 입대 지원을 포기하겠다"며 번복한 아버지들도 있다고 한다. 2차 대전 때 징병관으로 임명받은 한 미군이 소집영장 1호를 자신의 아들에게 보냈다는 이야기와는 극과 극이다.
저마다 딱한 사정이 있고, 아들이 위험한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군인이 되기로 작정했을 때는 그에 따르는 책무를 다해야 한다. 군에 지원했으면 군복무에 따르는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전쟁이 났으니 안되겠다 싶어 아들의 지원을 취소시키려는 것은 너무 타산적인 처사다.
이미 복무 중인 아들이 전쟁터에 나가 무슨 일을 당할지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자유의사로 입대하고, 일단 입대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다. 이는 전쟁이 터지면 몸바쳐 국가를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깔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나가는 게 두려워 "빼달라"고 하면 주류사회를 헤쳐나가야 할 아들을 약골로 만들고 만다. 더 이상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