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 사회참여

2001-06-1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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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화의 본질 가운데 하나를 잘못 이해한 이조시대 남자들은 모두 만성 가학증에 걸린 듯 여성 학대를 일삼았다. 이조 500년동안 경제 발전을 전혀 이루지 못한 근본 원인은 그 당시 보편화된 여성 천대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노동력의 절반인 여성들을 학교 문턱조차 못 밟게 만들고 허드렛일이나 하도록 길들이며 대대로 무용지물화 시키고도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했다면 가뭄에 콩 나기를 기대한 것 이상으로 한심한 정신상태일 것이다.

최근 한국 여성들이 머리 쓰는 분야에서부터 근육으로 경쟁하는 부문까지 세계를 무대로 발군의 실력을 뽐내고 있는 현상은 하등 놀랄 일이 아니다. 나는 한국 여성들의 잠재력을 집안과 주위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만시지탄이지만 수 천년간 녹슨 할머니들의 두뇌가 퇴화를 거부하며 보존돼 오다가 이제 막 꽃 피우기 시작한 사실에 경이와 찬사를 보낼 뿐이다. 한국의 마지막 남은 프론티어는 장래를 짊어질 여성들이라고 믿는다.

각종 천대 속에서도 그나마 한국 아들들을 부성 악습 유전으로부터 보호하며 교육시킨 공은 순전히 어머니들 몫이다. 백수건달 식 부계 생활양식을 은연중 타파시킨 모성애의 지혜와 용기가 아니었다면 한국 남성들은 지금쯤 영락없이 거지 신세를 면치 못했을 뻔했다.


미국 대학에서 여학생 숫자가 남학생 수를 추월한 것은 퍽 오래됐다. 특히 남녀공학 유수 대학교에서 여학생이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하는 예는 너무나 흔해 뉴스거리조차도 못된다. 또 종전에는 절대다수의 여학생들이 인문계 전공이었지만 최근에는 남학생들만의 영역으로 알려진 자연계 특히 이공 계통으로 괄목할 만큼 진출하고 있다.‘여학생들은 수학과 과학을 잘 못한다’는 그릇된 인식도 여지없이 깨지고 있다. 의과대학 재학생중 반이 여학생들이며 법대생들의 남녀 비율도 이와 비슷하고 경영대학원에도 여학생이 대거 등록하고 있다.

직장 상황도 이 같은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정부 부문엔 재능 있는 여자들이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 고위직에도 여성 임용이 크게 늘었다. 워싱턴주 상원의 경우 49명중 거의 반수인 23명이 여성의원이다. 입법부 선출직에도 여성이 급속히 늘어 법안의 성격이나 사회 이슈 접근법이 달라지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여성 지위향상을 위한 노력의 결과로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눈에 띄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다. 그러나 사회의 오랜 인위적 장애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중앙부처 5급 이상 공무원 중 여성은 4%에 불과하며 여성 공무원의 대다수가 20∼30대에 퇴직, 가사에 전념한다는 최근 통계만 봐도 뿌리깊은 악습의 잔재를 느낄 수 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학교에는 마치 유행처럼 여자 총장 임용 바람이 불고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 이어 최근 브라운대학과 프린스턴 대학 총장도 여성이 임명됐다. 프린스턴 대학은 1969년에야 여학생을 신입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여성 사회참여는 지난 30여년간 괄목하게 신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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