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은 부모들의‘성취 제일주의’가치관에 대개 거부반응을 보인다. 능력 있고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청소년일수록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한 생활을 동경하는 경우가 많다. 얼핏 성공을 안 해도 그만 이라는 식의 느슨한 태도로 보이지만 나름대로‘진실한 인생’을 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다.
흔히들 자녀들의 대학 진학과 직장 선택은 자녀 본인들의 의견을 존중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의 진학과 취업은 선도적 차원에서라도 진지하게 대화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들이다. “의사, 변호사가 되라”고 강요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네 인생이니 네가 살아라!”고 방임하거나“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지!”라며 체념할 수도 없다. 자식 가진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딜레마이다.
많은 한인 가정에서 세대간의 가치관 차이로 부모-자녀 관계가 쌍곡선을 이루는 경우를 흔히 본다. 부모는 자녀들이 박사, 의사, 변호사가 되는 데 이민의 꿈을 걸고 있지만 막상 자녀들은 공부보다 춤, 노래, 그림, 스포츠, 연예 따위에 더 심취할 수도 있다. 우수한 두뇌와 능력의 소유자일수록 독창력과 진취력이 남보다 뛰어나게 마련이다.
임상 교육심리학의 측면에서 보면 이 같은 가치관 차이의 갈등은 성공의 참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 지에서부터 따져야할 것이다. 부모의 과잉보호 아닌 자녀의 두뇌능력, 성취욕, 경쟁심 및 낙천적(또는 적대적) 태도 등 개성이 중시돼야한다. 학업 성취도가 성공의, 또는 인생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성적은 한때의 지표에 불과한 것이다.
자녀에게 특정 대학이나 직업을 택하도록 강요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단(Self-determination)하도록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한 소년을 인터뷰하면서“만일 산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하겠니?”라고 물었다가“나무 밑에 앉아서 아빠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겠어요”라는 대답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너무나 소극적이며 의존적인 과보호 소년이었다. 이런 아이는 매사 간섭하는 부모를 떠나서는 생존하기 힘든 무능력자로 성장한다. 필자는 이 소년으로부터 도와달라고 소리 지르고 높은 능선과 계곡을 탐험하며 방향을 찾아보겠다는 대답을 기대했었다.
요즘 미국 대학들은 신입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기숙사를 호화롭게 꾸미고 있다. UCLA는 일출·일몰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아파트식 기숙사에 서핑, 요가, 마사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텍사스 대학도 기숙사에 마사지 서비스(30분에 24달러)가 있고 스낵바, 자동청소 오븐, 초고속 인터넷 접속라인 등이 구비돼 있다. 학생들이 공부벌레가 되기보다는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학창생활을 보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자녀들의 구속이나 과잉보호는 옛말이다. 판단의 자유를 주면‘착각의 자유’에서 터득하는 교훈도 있게 마련이다. 갖다주는 밥보다는 찾아먹는 밥이 더 맛있다. 성취욕은 본능적이다. 부모와 자녀가 무엇이 성공인가를 놓고 맞서봤자 적대의식만 조장된다. 부모가 싫은 성공도 자녀에겐 바람직한 성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