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컴퓨터 칩 제조 회사에서 5년 넘게 일했던 김씨가 실리콘밸리 소재 유수 컴퓨터칩 생산 회사에 스카웃된 것은 2년 전 일이었다. 그 때만 해도 실리콘밸리는 캘리포니아의 여름 날씨처럼 모든 것이 뜨거웠다. 실리콘밸리에 있던 크고 작은 회사의 주식들은 연일 경쟁적으로 오르고 있었고, 이들 회사들은 필요한 기술자를 미국 내에서 구하지 못해 한국이나 인도 같은 주변국에서 우수 인력을 유치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씨는 대졸 전문직 종사자의 단기 취업용 비자인 H1-B를 받아 미국에 입국했다. 김씨의 아내와 두 아이는 동반가족으로 H-4 비자를 받았다. 순탄하던 김씨의 미국생활에 먹구름이 낀 것은 서울이라면 장마철이 시즌에 접어들 지난해 7월께부터였다.
스탁 옵션이다 뭐다 해서 흥청대던 회사 분위기가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컴퓨터 쉽가격의 급격한 하락과 함께 식어갔다. 김씨가 일하던 회사 주식도 연말에는 잘 나갈 때의 반 토막이 되더니, 올 들어서는 회사에 감원설이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의 책상에도 핑크 슬립을 넣어 있었다.
-갑자기 감원 통지를 받은 김씨는 장래가 막연하다. 그런데 김씨는 최근 이민국이 김씨 같은 H1-B비자를 갖고 일하다 해고된 외국 근로자가 계속 미국에 잔류할 수 있도록 유예조치를 실시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신문기사를 읽었다. 당연히 김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이민국의 공보관이 발표했다는 이런 내용의 보도를 믿어도 되는가? ▲현행 이민법은 감원이 된 H1-B비자 소지 근로자는 해고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새 일자리를 구하거나 아니면 출국하도록 정하고 있다. 최근 신문들이 이민국의 공보관의 말을 인용해 이 조항의 일시 유예조치를 크게 보도했다. 그러나 이민국은 이 보도 내용이 이민국의 공식 입장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김씨는 회사에서 해고된 지 10일 이내에 출국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물론 김씨가 이 기간을 넘긴 다음 일자리를 구했다 하더라도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김씨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제 날짜에 신분변경 신청을 할 수 없었다고 설명을 해 이민국을 납득시키면 신분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것은 보장된 결과는 아니다.
-사정이 다급해진 김씨는 이민국이 무어라고 할망정 I-94에 적힌 적법체류 기간인 내년 5월까지 미국에 남아 있을 작정이다. 김씨는 일손이 바쁜 이민국이 설마 자신이 불법체류를 한다고 해도 알 도리가 있겠는가 하는 막연한 생각이다. 김씨의 계획에 문제가 없는가?▲현행 이민법에 따르면 고용주는 H1-B비자 소유 직원을 해고할 경우에는 반드시 이민국에 이 사실을 통보하게 되어 있다. 이민국은 해고 통보를 받은 다음 해고 근로자의 H1-B비자를 취소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따라서 김씨가 일하던 회사가 이민법에 충실하게 신고 의무를 이행했다면 김씨가 해고된 사실을 이민국이 이미 알고 있고, 머지 않는 장래에 김씨 비자를 취소하는 수속을 밟게 된다고 보아야 한다.
-만약 김씨가 일하던 회사에서 김씨를 위해 이민수속을 이미 밟고 있다고 하자. 이 이민수속은 어떻게 되는가? ▲김씨가 만약 다른 회사에 취직하고, 새 회사가 이민수속을 밟아 준다면 김씨는 다시 이민 수속을 처음부터 해 볼 수 있다. 단 가령 김씨가 만약 이미 I-485를 신청한 상태이고, I-485를 신청한 지 6개월이 지났을 경우 김씨가 처음과 동일한 직종에서 일자리를 구했다면 노동확인 과정과 I-140를 새로 거칠 필요가 없다.
-해고된 김씨가 곧바로 새로 H1-B를 스폰서 해줄 회사를 찾았다고 하자. 김씨는 언제부터 새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가?▲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면 H1-B로 신분 변경을 신청한 다음에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첫째, 미국에 적법하게 입국해야 한다. 둘째, 고용주의 H1-B 변경신청에 하자가 없어야 한다. 셋째, 김씨가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일한 사실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김씨는 일단 새 회사가 H1-B 신청서를 이민국에 접수한 직후 곧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