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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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 경고

2000-10-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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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법

▶ 김성환 변호사

미란다 경고(Miranda Warnings)이란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했거나 체포하지 않았더라도 피의자가 임의로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상태에서 피의자를 심문할 때 반드시 피의자에게 하는 다음과 같은 경고를 말한다.

첫째, 피의자는 경찰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 묵비권이 있다는 점, 둘째, 피의자의 진술이 피의자 자신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점, 셋째,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고, 심문도중 변호사를 대동할 수 있다는 점, 넷째, 경제적 이유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을 때라도, 원하면 변호사를 정부가 대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요즘 경찰관들은 대개 미란다 경고가 적힌 종이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왜냐하면 경찰관이 피의자의 자발적인 진술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미란다 경고가 없는 상태에서 피의자가 한 진술은 재판에서 증거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미란다 경고에는 체포되었거나 체포되지 않았더라도 피의자가 임의로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상태에서 한 진술이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진술일 수 없다는 해석이 담겨 있다.

이 미란다 경고는 민권운동이 그 정점에 달했던 지난 66년 연방대법원의 Miranda v. Arizona(384 U.S. 436)를 통해 헌법적 권리로 자리를 잡았다.


미란다 경고는 헌법 수정 5조에 담긴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권리와 수정 14조에 담긴 공정절차의 권리에 기초한 피의자의 헌법적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강압에 의한 자백이 아닌 한 자백의 증거능력이 인정됐다.

그러나 미란다 케이스를 기점으로 미란다 경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로부터 받은 진술은 재판에서 사용될 수 없게 된 것이다. 훗날 다수 공중의 안전이 걸린 긴박한 상황에서는 미란다 경고가 없더라도 자백의 증거능력이 있다는 등 미란다 경고에는 많은 예외가 생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예외에도 불구하고 미란다의 법 정신과 원칙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따라서 미란다 경고를 받은 피의자가 심문을 전이나 혹은 심문 도중에 묵비권 행사의 의사를 표시하면 경찰은 즉시 심문을 중단해야 한다. 피의자가 변호사의 조력을 받겠다는 의사를 표시할 때 역시 심문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미란다 경고는 피의자의 인권보호란 측면에서는 더없이 훌륭한 장치이다.

그러나 경찰이나 검찰의 입장에서는 진범을 잡고도 경찰의 부주의한 심문 때문에 놓아주어야 하는 부조리의 전형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거 지나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올 수 밖 에 없었다. 그러자 미연방의회는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미란다 케이스에 대해 판결이 나온 2년 뒤 미란다 경고를 하지 않더라도 용의자가 임의로 한 자백은 연방법원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법안(18 U.S.C Section 3501)을 제정했다.

무장 은행강도행각을 벌린 디커슨의 재판이 이 법안의 합헌성을 묻는 중대한 시험무대가 되었다. 은행강도 용의자 디커슨은 FBI에 자신의 범행일체를 자백했다. 물론 가혹행위나 강압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디커슨이 자백 전 미란다 경고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디커슨은 재판에서 자신의 자백을 검찰이 사용할 수 없도록 해달라고 나섰다.

검찰은 연방의회가 제정한 법을 들이대며 미란다 없이도 자발적으로 한 자백은 문제가 전혀 없는 것 아니냐고 맞섰다.

결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 23일 내린 Dickerson v. United States(2000)에서 디커슨과 미란다 경고에 손을 들어 주었다. 연방대법원은 미란다 경고 없는 자백도 자발성이 분명할 때는 유효한 자백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 의회의 입법의지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은 미란다 경고는 헌법해석에서 파생된 권리이므로 의회가 일반법률을 만들어 이를 뒤집을 수 없다고 보았다. 미란다 경고는 이미 국민문화에 뿌리를 내렸다고 할 정도로 경찰의 일상업무수행의 일부로 자리잡은 지 오래되었다는 점도 연방대법원의 판결이유의 하나였다. 한편 스칼리아와 토마스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미란다 경고는 결코 헌법에 기초를 둔 헌법적 권리가 아니라, 대법원이 판례로 내린 결정에 불과하므로 의회가 법률제정을 통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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