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호경기와 취업박람회

2000-10-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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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광 (경제부 차장대우)

최근 한인타운에서는 IMF로 한때 완전히 끊겼던 미주 한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기업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하지만 모처럼 열린 박람회에 대한 한인들의 호응은 저조했다. 이틀간의 박람회 기간에 취업을 희망한 한인의 수는 고작 170~180여명. IMF 이전의 500명을 넘나들던 수준과 비교하면 절반도 못되는 수치다. "미 경기호황과 한국 경제의 위축으로 취업 희망자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주최측도 놀라는 분위기다.

얼마전 ‘미 대학생들이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는 색다른 보도를 본 기억이 난다. 이 보도에 따르면 최근 계속된 호경기 속에서 인력난을 겪고 있는 대기업들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졸업 전에 다양한 베니핏 제공을 약속하며 인재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후한 연봉과 스탁옵션은 기본중의 기본.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보기술(IT)과 같은 특수업종의 인력 스카웃전은 치열하다.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해서라면 상대방 진영에 ‘목숨을 건’ 게릴라식 침공도 서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회사는 상대기업 전산망을 해킹, 직원의 정보를 빼내는가 하면 라이벌 업체의 건물 앞에서 출근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채용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한다.


’직장을 고르는’ 행복한 시대에 살다보니 대학생들의 의식도 변화하고 있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잡트랙닷컴’(www.jobtrack.com)이 최근 2,000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에서 이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뚜렷이 감지할 수 있다. 42%가 직업 선택시 연봉, 승진 가능성, 직장 소재지 보다 직장생활과 개인생활의 균형을 가장 중시한다고 응답했다. 우수한 인재 유치를 위해서는 기업들이 연봉, 스탁옵션, 보너스 너머에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간혹 한인 2세 중 한국에 있는 기업에 취업했다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들은 "연봉을 떠나 미 기업과 다른 한국 기업의 상명하복 등 비합리적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취업을 앞둔 또 다른 한인 2세는 한국내 기업 취업에 대해 "미 기업보다 더 나은 조건이 없다면 굳이 한국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며 잘라 말했다.

미국의 장기호황에 따른 구인난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르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은 뭔가 ‘색다른’ 제안을 해야 할 것 같다. 미 기업을 뛰어넘는 메리트가 없다면 이곳 한인들에게 한국 기업 입사는 큰 매력이 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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