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치 이야기

2000-10-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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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포먼 칼럼

▶ 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

한국인 동료 교사들과 정치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 1972년 내가 지지하던 대통령 후보는 조지 맥가번이었고, 닉슨 정부의 베트남 정책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닉슨 대통령을 자주 비판하였다. 그때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 독재시대가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봉사단 오리엔테이션에서 박대통령을 비판하는 말을 삼가하라는 경고를 받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하면서 독재정치를 비난하곤 하였다. 박대통령에 대해서 한국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그를 칭찬하거나 또는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키는 두 부류로 나뉘는 것을 알았다.

한번은 친구와 정치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박정희 대통령은 능구렁이다" (그때 나는 ‘능구렁이’라는 새로 배운 단어를 써먹으려고 기회를 찾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친구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고개를 돌리면서 주위를 살피는 것이었다. 아무도 우리들의 대화를 엿듣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친구는 내 귀에다 대고는 "Me too" 하고 말하더니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는 "우리들만의 비밀" 이라고 하면서 싱긋 웃었다..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미국에서 생각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부대통령이었던 스피로 애그뉴가 사임하였고, 얼마후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다. 믿지 못할 일이 조국에서 일어나고 있었기에, 갑자기 나는 뉴스광이 되어 워터게이트 뉴스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귀에 대고 살았다. 타임 잡지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샅샅이 읽었고, 워터게이트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과 사건들을 우리 가족사항보다 더 잘 알 정도로 고국으로부터 들려 오는 소식에 집착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워터게이트 뉴스에 중독이 되어 있었다. 동료 선생들은 뉴스에 집착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특히 워터게이트에 대하여서는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도청을 하였다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인가 하는 표정이었고, 오히려 두번이나 대통령으로 당선된 리처드 닉슨이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인 친구 한명은 오히려 근심된 표정을 지으면서 만약에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면 헨리 키신저도 그만 두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1974년 8월 9일 닉슨은 사임했다)

때로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명백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25년 전, 그때를 돌이켜 보면서 느낀 몇 가지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첫째, 외국인과 정치 이야기를 할 때 그 나라의 지도자를 욕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마치 상대방의 가족에 대하여 나쁜 말을 하는 것 같은 무례한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안 이야기를 내부사람이 하면 괜찮지만, 외부사람이 하면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속담에 망나니일지라도(He may be a son-of-bitch), 내자식이 망나니 (He is my-son-of-bitch) 라고 말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라는 말이 있다.

둘째, 국내에서 능력을 평가받지 못하는 대통령도 외국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닉슨은 한국사람들에게는 위대한 정치가로 보였지만 내 눈에는 흠 많은 한 인간으로 비치었던 것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사람들은 고르바초프가 공산주의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인 용감한 정치가로 존경한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에서 1 퍼센트밖에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증명하듯이 러시아사람들이 그를 보는 눈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국으로부터 오는 소식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이다. 조국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혼란에 처하였을 때에 미국의 언론이 나의 생명줄처럼 느껴졌고, 미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미국에서 사는 한인1세들이 한국신문을 읽으면서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있다. 고국으로부터 오는 소식은 영혼을 적셔주는 단비와도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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