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타이턴스의 교훈을 기억하라

2000-10-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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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 칼럼

▶ 박 덕만 (편집위원)

요즘 극장에서 상영중인 영화 가운데 ‘타이턴스를 기억하라’가 있다. 지난 1971년 미남부 버지니아주 소도시 알렉산드리아를 무대로 풋볼경기와 인종문제를 믹스한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다. 흑백고교통합령에 따라 백인학교였던 TC 윌리엄스고교에 흑인학생들이 전학오게되고 당연히 풋볼팀 구성도 흑백혼합으로 바뀌게 된다. 감독도 기존의 백인코치를 제치고 흑인 허만 분이 기용되는데 팀이 한번이라도 패하면 쫓겨나게 돼있어 팀의 승패는 곧 자신의 사활과도 직결된다.

분감독은 방학기간 선수들에게 강도높은 합숙훈련을 시킨다. 분은 물과 기름처럼 융화되지 못하는 흑백선수들을 모아놓고 "서로 좋아하라고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동료로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라"고 말한다. 마치 유격훈련을 방불케하는 강훈련을 통해 선수들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팀메이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피부색을 극복하고 동지애로 똘똘뭉친 타이턴스는 경기장 안팍에서의 온갖 편견을 물리치고 스테이트 챔피언에 오른다.

올시즌 메이저리그야구가 뉴욕팀들간의 맥빠진 ‘서브웨이’ 월드시리즈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된 것 같다. LA다저스는 지난해 케빈 브라운에 이어 숀 그린이라는 억대연봉의 선수를 영입하는등 전체구단중 3번째로 많은 돈을 쓰고도 또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다저스가 매년 월드시리즈 진출후보로 꼽힌채 시즌을 시작했다가 ‘제실력을 발휘 못한채’ 시즌을 마감하고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팀웍부재 때문이다. 팀스포츠인 야구는 직소퍼즐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선수 하나하나가 뛰어나도 제위치에 끼워넣지 못하면 그림이 이루어질 수 없다. 프로선수 입장에서 개인기록은 연봉과 직결되는 만큼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자기 개인기록이 팀승리에 우선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홈런 몇개,타점 몇개,탈삼진 몇개등 기록만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개인성적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 풍조가 메이저리그야구에 만연됐다. 그 대표적인 예가 LA다저스다.


다저스의 선수 개개인을 보면 모두 훌륭하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중 하나인 케빈 브라운,1500만달러 연봉에 조지아주에서 살고있는 가족이 LA를 방문할때면 한번에 10만달러가 든다는 자가용전세기 서비스까지 받는다. 올시즌 18승을 올린 박찬호, 메이저리그 최고의 까다로운 구질을 가졌다는 대런 드라이포트에 막강한 클로저 제프 쇼등 투수진은 타구단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타격에서도 42개의 게리 셰필드를 비롯해 에릭 캐로스,터드 헌들리,션 그린,에이드리언 벨트레등 2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타자들이 즐비하다. 이처럼 개별적으로는 뛰어난 선수들이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한채 겉돌고 있기 때문에 승리의 그림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다.

다저스 클럽하우스를 가보면 안다. 경기가 끝나고 락커룸에 들어가면 저마다 남남이다. 어쩌다 대화를 한다해도 백인선수들은 백인선수끼리, 흑인선수들은 흑인선수끼리, 히스패닉선수들은 히스패닉선수들끼리 나눈다. 박찬호는 자연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감독이라도 팀융화를 도모해야 할텐데 타미 라소다이후 1~2년이 멀다하고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그만한 여유를 갖기가 어렵다.

올시즌 다저스 전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지난88년시즌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던 다저스팀과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우선 주전포수에서 터드 헌들리(타율 2할8푼6리,홈런 23개,타점 64)는 현 에인절스 감독인 마이크 소샤(2할5푼7리,홈런 3개,타점 35)보다 월등한 타력을 갖고있다. 1루수 에릭 캐로스(2할5푼1리, 홈런31개,타점 106)와 프랭클린 스텁스(2할2푼3리, 홈런 8개,타점 34)그리고 3루수 에이드리언 벨트레(2할9푼1리,홈런 20개,타점 85개)와 제프 해밀턴(2할4푼5리,홈런 12개, 56타점)을 비교해봐도 현격한 차이가 난다. 나머지 선수들중에서도 2000년팀 선수의 기록이 못한 포지션은 단 하나도 없다. 특히 올시즌 다저스 공격의 핵인 게리 셰필드는 3할2푼2리의 타율에 홈런 42개,타점 107개로 88년팀 주포 커크 깁슨의 기록(타율 2할9푼,홈런 25개,타점 76)과 비교가 안될정도로 뛰어났다. 그래도 깁슨이 88년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던 이유는 팀을 플레이오프 진출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다저스는 오프시즌 또다시 돈들여 유명선수 스카웃에 나서기 보다는 팀웍강화를 위한 단체유격훈련이라도 받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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