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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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포용이 아니라 존경받아야"

2000-10-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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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석 내 의견은 이렇습니다

▶ 연방 상무장관 노먼 미네타

노먼 미네타 연방 상무장관은 아시안으로는 연방정부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이다. 샌호제 출신의 미네타 장관은 아시안 최초의 미 주요 도시 시장, 연방하원의원, 연방장관이란 기록을 갖고 있으며 욱일 승천하는 미국내 아시안 파워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 LA 한인타운을 방문, 커뮤니티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미네타 장관을 만나 봤다.

-첫 아시안 장관이 된지도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첫번째 아시안으로 장관 일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습니까.


▲모두들 존경심을 갖고 대해 주기 때문에 전혀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67년 첫 샌호제 시의원이 된 것을 시작으로 미정계에 일찍 진출해 많은 업적을 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를 지금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처음 샌호제 시장에 출마하자 집 차고문에 일본인을 비하하는 ‘Jap’이란 낙서가 칠해진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어렸을 때 겪은 수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자 온 가족이 아무 잘못도 없이 와이오밍 산골에 있는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50여년전 수용소생활을 하던 일본계 소년이 어느 날 미국의 상무장관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아직 상무장관으로 취임한지 얼마 안됐지만 그동안 어떤 분야에 주력해왔습니까.

▲상무부는 총직원 4만명, 연예산 50억달러가 넘는 큰 기구입니다. 첫째는 재능 있는 아시안을 발굴해 고위직에 등용했습니다. 장관 비서실장, 법률 고문, 상무부내 민권국장이 모두 아시안이며 정동수씨가 맡고 있는 차관보 대리도 중요한 자리입니다. 두번째는 지금의 경기호황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정책을 세우는 일이며 세번째는 e비즈니스의 활성화를 돕는 일입니다.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소신껏 일해 보고 싶습니다.


-미네타 장관은 가장 성공적인 아시아계 정치인의 하나란 평을 받고 있습니다. 스스로 보기에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라 봅니까.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줬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장점을 말하라면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하기보다는 화합의 정치를 하려 애썼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한인, 일본인, 중국인등 서로를 구별해 따로따로 놀면 발언권도 없고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아시안들이 힘을 합칠 경우 이제 주류 사회 정치인들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맨 처음 어떻게 정계에 입문하게 됐습니까.

▲처음 시의원이 된 것은 자의로 출마한 것이 아니라 마침 자리가 비어 임명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일본 속담을 들며 아시안이 정치하다가는 고생한다며 말렸지만 우리도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강제수용소에 끌려갔을 때는 아무도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대변해 주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을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원래는 공화당이었습니다. 민주당을 택한 것은 60년 선거에서 닉슨을 지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화당도 이제는 아시안등 소수계의 존재를 ‘포용’(tolerate)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포용이 아니라 ‘존경’(respect)입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지난 8년간 80명의 아시안을 고위직에 임명했습니다. 장식용이 아니라 각 커뮤니티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들로 말입니다. 정치인들은 아시안을 돈줄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미국에는 재능 있는 아시안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제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아시안의 금전적 자원이 아니라 인력 자원을 활용하게 해야 합니다.


-미국도 경기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한국도 경기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양국의 향후 경제 전망은 어떻습니까.

▲미국은 그동안 과열됐던 경기가 정상을 되찾은 것으로 우려할 만한 현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도 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와중에도 금융개혁 등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일본보다는 훨씬 전망이 밝다고 봅니다. 미국과 한국의 경제는 낙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인을 비롯한 미국내 아시안 아메리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선거는 1960년이래 가장 근소한 차이로 승부가 결정될 것입니다. 당시 한 투표소에서 1표씩만 결과가 차이 났어도 승패는 뒤바뀌었을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14세 때 맨손으로 미국에 건너 왔으며 어머니는 소위 말하는 ‘픽쳐 브라이드’였습니다. 당시 아버지의 삼촌이 북가주 살리나스에서 농장을 하다 일손이 달려 아버지를 불렀는데 살리나스가 어딘지를 모르고 시애틀에서 내려 1년반 동안 막노동을 하며 내려 왔습니다.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제가 장관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미국이 진정한 기회의 나라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제 젊은 아시안들이 오르지 못할 자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류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숨죽이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고 끊임없이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중 가장 기본은 투표입니다. 이번 선거가 아시안의 힘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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