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TV토론과 거짓말

2000-10-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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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클린턴은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했다. 캐딜락을 몰고 다니는 웰페어 여왕, 소련인들은 먹을 게 없어 톱밥을 먹는다는 이야기 등은 레이건이 꾸며 낸 ‘소설’이다. 사람들은 그렇지만 왜 이들이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이해한다.

"소설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은 나를 모델로 한 것이다" "인터넷 창시자는 바로 나다"- 누가 한 말일까. 앨 고어라는 것은 상식이 되다시피 됐다. 이는 고어의 과대망상적 어록중 최신작으로 특히 잘 알려진 작품들이다.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이 나와 사담을 나누기 위해 공식 출발을 45분이나 늦췄다" 초급 장교시절을 회고하며 고어가 한 말이다. 기라성 같은 참모진을 대동하고 하급부대 시찰을 나온 4성 장군이 위관급 장교와 사담을 나누기 위해 이처럼 시간을 지체했다는 게 믿어지는 이야기일까.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은 2∼3분, 기껏 길어서 5분 미만 동안 출발에 앞서 사기진작 차원에서 도열한 위관급 장교들에게 말을 건넸고 그중 우연히 고어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게 당시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 그게 이런 식으로 과장된 것이다.


정치인은 거짓말을 하게 마련이다. 그 거짓말은 그러나 왜 했는지 대체로 이해가 되는 것들이다. 고어의 경우는 왜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도대체가 이해가 안가는 것이어서 문제다.

자신도 모르게 과장하고 거짓말을 하는 고어의 버릇은 ‘남부식 과장법’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부의 지적이다. 집안 내력이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어의 아버지 앨버트 고어는 장광설에 과장어법으로 유명했던 정치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정계에 입문한 고어니만치 자신도 모르게 과대망상적 표현이 입에 붙어 다닌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내력은 어찌됐든 고어는 거짓말의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사상 최장의 호경기다. 현직 격인 고어가 내건 선거 이슈에 대다수의 유권자가 동의하고 있다. 이쯤 되면 올 대통령 선거는 해보나마나가 되어야 하는데 어쩐지 ‘세일’이 안된다. 왜? 전국의 유권자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진행된 TV토론에서 고어는 과대포장에, 또 완전한 허구인 거짓말(연방재해관리청장을 대동하고 텍사스의 화재, 홍수현장을 방문했다는 등의 거짓말)을 세차례나 에피소드식으로 태연히 한 게 들통나서다.

올 대선은 두주전만 해도 고어 승리로 굳어진 인상이었다. 첫 TV토론 후 고어 승리는 더 결정적인 듯 했다. 이슈 제기, 아젠다 설명 등에서 고어가 모두 앞선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기 때문. 그러나 거짓말이 들통이 나면서 선거 흐름은 뒤바뀌었다. 대통령 후보 TV토론 3연전의 지금까지 성적은 그래서 ‘고어의 2연패’라는 게 미언론의 지적이다. 3차 TV 토론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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