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로버트 김을 기억하자

2000-10-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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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탁제<글렌데일>

며칠전 나는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발신인을 보니 전혀 생소한 이름 그리고 주소였다.

누굴까? 나는 황급히 봉투를 열었다. 조그만 카드에 정성스럽게 쓴 글내용은 이러했다.

"저는 로버트 김의 아내입니다. LA에서 있었던 남편을 위한 서명과 모금을 위하여 도와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베푸는 자에게 약속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귀 가정과 하시는 모든 일에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장명희 드림”


이 글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나의 눈시울은 뜨겁게 젖어들었다. 감사의 편지보다는 나에게 애절한 호소로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금새 부끄러움을 느꼈다.

왜 더 도와주지 못했던가! 남이 하니 마지못해 끌려가는 어설픈 동정심이나 아니었나…

나는 마음을 정리하고 한 고독한 애국자의 부인을 연상해 본다. 그 많은 감사편지를 일일이 자필로 보내다니.
로버트 김! 한때 이 이름자는 방송과 신문을 통해 우리를 흥분시켰고 동포의 끈끈한 정을 회생시켰다. 그래! 돕자! 위기 앞에 유독 강한 우리민족의 결속력을 한데 모았다.

우리는 다짐했었다. 결단코 로버트 김을 구출해야한다고. 이렇게 거센 열기가 한동안으로 끝났다. 방송은 입을 다물었다. 신문도 외면했다.
언제서부터인가 우리 스스로의 입가에 오르내리는 양은냄비 국민성을 실감케 하는 로버트 김 사건! 내말은 결코 석방운동이 중단되었다는 속단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그 후의 소식을 전혀 접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담당변호사의 활동은 어느정도 진척되고 있는지. 옥중의 로버트 김의 근황은….

단지 한 불행한 동포를 돕고자 목매인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우리 조국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기에까지 이른 자랑스러운 그에게 당연히 우리는 자유를 돌려받도록 해주어야한다. 이것은 동정이 아니라 우리의 의무이다.

동포사회 일각에서는 맹렬히 한국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이렇게 무성의하게 방관할수가 있는가라고. 그러나 사건의 핵심을 열어보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국가간의 외교문제도 있으리라고 본다.

좀 빗나간 이야기일지 모르나 차제에 해외동포의 권익문제를 재론하지 않을수 없다. 모국의 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거론되는 공약이 있다. 해외동포의 권익을 전담하는 정부조직의 개편이다. 로버트 김사건을 당면하고 보니 좀더 적극적이고 강력한 한국정부의 지원이 아쉽기만하다.

국제외교사를 통해 헤아릴수 없는 스파이사건을 우리는 보아오고있다. 강력한 국가들은 단호히 전쟁도 불사하리만큼 자국민을 보호하고 있다. 로버트 김사건을 역으로 놓고 보자. 만약에 미국 스파이 혐의자가 한국감옥에 있다면 과연 미국은 침묵을 지키고 있겠는가.
결단코 로버트 김의 무죄석방까지 우리는 제2 제3의 캠페인을 전개해나가야 되리라 본다.


김탁제<글렌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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