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식이 뭐길래

2000-10-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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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진식<사이프러스>

우리집 둘째가 걸프렌드를 집에 데리고 왔길래 찬찬히 살펴보니 솔직히 외형에는 좀 실망스러웠다. 약해 보이는데다가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눈매가 성깔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좁은 생활영역에서 좋은 상대를 구한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아는 우리로서는 두사람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기로 했다.

“엄마, 경아가 어른들과 함께 사는 것도 괜찮데” 둘째의 말인즉 엄마 아빠가 미국에 이민와서 저희들 위해 고생을 너무 하셨으니 늙어서는 자식들이 보살펴야 않겠느냐며 동의를 구했다나. 우리로서는 이미 큰애가 결혼해서 이웃에 집을 마련하며 살고 있었지만 우리가 끼여들어 살기에는 공간이 좁아 심정적으로는 둘째와 같이 살았으면 했는데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경아가 보석처럼 생각되었다.

그 뒤로 경아는 일주일에 이틀은 꼭 우리 집에 들렀고, 가족의 생일에도 공휴일의 바베큐 파티에도 참석하게 되다보니 자연히 집안들과도 알게 되었다. 두고보니 밥도 잘 짓고 김치도 담글줄 안다 한다. 가끔은 맛있는 음식을 사들고 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어른들과 함께 살겠다는 것만도 얼마나 기특한가.


“경아야, 참 잘 생각했다. 다 갖추어있는 우리 집에 너는 몸만 들어오면 경제적으로 절약되고, 나는 연금을 받으니 너들에게 보채는 일도 없을테고, 아이를 낳으면 우리가 곁에서 거들어 기르고…서로가 좀 불편해도 참고 사랑하고 화목하면 어찌 가정이 행복하지 않겠느냐”하고 나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솔직히 나는 가끔 TV에 비친 양로원 노인들의 무표정 속에서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슬픈 한을 읽고 우리의 자화상을 보듯하여 몹시 우울해진다. 소시민으로서 시류의 흐름도 외면하고 오직 가족의 안위와 자식들의 성장을 위해 살아왔는데, 영광의 뒤안길에는 머리 올올이 희어지고 뼈마디 마디 쑤셔 허무를 씻어주는 신의 소리보다 고독을 달래주는 사랑이 더 그리워서 이제는 자식들의 따뜻한 가슴에 기대어 살고 싶다.

그래서 일년을 넘게 사귀어 왔고하니 결혼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둘째의 행동이 심상치 않다. 경아도 오는 횟수가 적어졌다. 부모의 육감은 자식의 변화에 예민해진다. 둘째는 내키지 않는 듯 주저하다가 말한다.
“경아가 어른들과 같이 살면 스트레스 받는다고 따로 나가 살자고 해서 내가 절대 그럴 수 없다하니 결혼문제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데요.”
몇주 뒤 둘은 그냥 친구로 남기로 했다고 한다. 며칠간은 좌절감에 분노마저 느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우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님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사는교? 요새 처녀들 누가 시부모와 같이 살라 하는교. 그러다가는 둘째 장가 못보내게 될테니 애들하고 같이 살아야겠다고는 입밖에도 내지마소.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면 같이 돌아가야지요” 한다.

나는 마음이 몹시 씁쓸해졌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지, 내가 거꾸로 살아가는지? 둘째가 우리 때문에 장가를 못든다면 부모로서는 부끄럽고도 슬픈 이야기가 된다. 조락하는 황혼길에 슬픔이 촉촉이 배어들어 가슴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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