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대중 대통령 일생은 하나의 드라마.

2000-10-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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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창<한국인권문제연구소 본부 이사장 대행>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소식을 들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인생의 묘미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전환시키는데 있으며 거기에 감동이 존재한다. 그리고 젊었을 때 고생하다가 인생 마지막에 이르러 꽃을 피울 때 감격스러워 보이는 법이다.

많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 들이지 않고 오히려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런 종류의 인간형에 속한다. 운명을 개척한 사람이다. 납치되어 죽을 뻔 하고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아 “이젠 끝났구나!” 하고 사람들이 생각했었는데 스스로 그 역경을 헤치고 노벨상까지 받기에 이르렀으니 그의 생애자체가 한편의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 유배되다시피 강제로 쫓겨온 것은 82년 12월23일이다. 워싱턴 공항에 내렸을 때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마중나와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손을 잡아 주던 광경은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때는 달러를 한푼도 못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워싱턴 아파트에 살면서 경제적으로 좀 어려웠다. 글을 써 팔아 생활비에 보탰다. 어떤 휘호는 100달러에 팔린 것도 있었다.


이 가운데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휘호는 以民爲天(이민위천)이다. “백성 생각하기를 하늘같이 여기라”는 뜻이다. ‘이민위천’은 ‘행동하는 양심’과 함께 그의 정치철학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85년 5월 미국에서 인권문제 연구소가 문을 열었는데 그 때 김대통령이 연구소 사무실을 방문해 선물로 주고간 휘호도 ‘ 以民爲天’이다. 그의 인권운동은 하루 아침에 시작된 급조품이 아니다. 1월 6일이 그의 생일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워싱턴 아파트 시절 그 좁은 데서도 간디의 손자 및 인권운동가들을 초청해 식사를 나누고는 했다. 만델라, 아웅산 수지여사, 아퀴노등 수많은 인권운동가들이 김대통령이 어려울 때 사귄 친구들이다.

야당투사 출신인 김대통령은 저돌적이고 억척인 것 같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너무나 인간적이고 인정미가 넘친다. 누구에게 NO 소리를 잘 못하는 것이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그러나 그가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친척들에게는 예상외로 엄하게 대해 성격의 전혀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맨 처음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것은 86년이 아닌가 싶다. 당시 에모리대 총장 제임스 레이니 박사가 추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후 매년 추천되었으니 14번 추천 끝에 수상자로 결정된 셈이다. 사실 노벨평화상을 받을 뻔한 일도 있었다. 그것은 87년 서독 사민당 의원들이 평화상 후보로 추천했을 때였는데 그해에는 국내에서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바람에 심사과정에서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 아침 신문기사를 읽어 보니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상 뉴스를 TV에서 보면서 부인 이희호여사의 손목을 꽉 잡았다는 표현이 있었는데 김대통령의 수상뒤에는 영부인의 40년에 걸친 눈물나는 뒷바라지가 숨어 있다. 김대통령 개인에게는 노벨평화상이 김대통령 부부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62년 결혼이후 이여사가 겪은 고초도 김대통령이 겪은 것 못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의미는 클린턴 대통령이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축하 성명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처럼 오랜 세월 그토록 많은 일을 해 이 영예를 얻게된 지도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수상은 그의 평생 헌신에 대한 적절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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