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USC에서 임권택 감독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영화제가 열린 적이 있다. 주최측은 미국인들 사이에는 생소한 임감독의 작품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작은 교실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글자 그대로 발디딜 틈도 없이 백인 학생이 몰려드는 바람에 수십명이 바닥에 앉거나 서서 봐야 했다. 자리가 없어 돌아간 사람도 많았다. 보고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한국 영화가 이렇게 수준 높은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한국 영화’ 하면 저질 엔터테인먼트의 대명사처럼 취급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옛날 얘기다. 영화의 본산 할리웃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 일본등 세계 각지에서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칭찬하는 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독일의 영화 전문지 ‘필름디네스트’는 최근 ‘할리웃 영화에 대항하는 한국 영화의 기적’이란 제하의 특집기사에서 “한국 영화의 약진은 진정한 기적”이고 찬사를 보냈으며 일본 니칸 스포츠는 “‘쉬리’가 한국 영화의 이미지를 바꿨다”고 보도했다. ‘쉬리’는 한국 영화사상 최고 흥행 수입을 올리며 ‘서편제’와 함께 한국 영화의 이미지를 바꿔 놓는데 큰 몫을 했다. NHK는 최신작‘시월애’에 대한 6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 한국 영화의 발전 원인을 분석하는 프로를 내보냈다. ‘시월애’는 시간을 뛰어넘는 남녀간의 사랑을 그린 애정물로 서정적이며 절제된 영상미가 돋보이는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 한국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것은 별 뉴스도 아니다. 최근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섬’이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9월 토론토 국제영화제에는 ‘텔미 썸딩’과 ‘반칙왕’이 호평을 받으며 미드나잇 매드니스 부문에 선정됐다. ‘주유소 습격사건’은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코미디 섹션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몇년전만 해도 영화 수출은 돈이 되지 않는 ‘빛 좋은 개살구’였지만, 한국 영화를 보는 해외의 시각이 달라지면서 이제는 제법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은 이미 100만달러의 해외 흥행수입을 올렸다.
이같은 한국 영화의 신장은 성과 안보등 각종 타부가 무너져 제작의 자유가 대폭 늘어난 데다 영화를 업으로 해도 밥을 굶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 사이의 영화 붐을 타고 LA와 뉴욕의 주요 영화학교에는 한국에서 영화수업을 받으러 온 유학생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할리웃의 한 영화 관계자는 “LA와 뉴욕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한국 학생수가 수백명선”이라며 이들이 한국에 돌아가면 한국 영화는 새로운 단계의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