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1세의 어윈 스튜어트는 한국전에 참전한 재향군인이다. 낙하산 부대의 일원으로 평양에 침투, 21세 생일을 평양에서 맞았었다고 자랑스럽게 경험담을 늘어놓는 그는 그러나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당시 당한 부상의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탄채 현재 웨스트LA 보훈병원의 신세를 지고 있는 그는 지난주 한국전 참전 전상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한 김명배 LA총영사를 만나자 얼굴에서 웃음을 놓지 않았다. 50년전 참전했던 나라의 총영사가 찾아와 위로해주는게 조금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도 약간은 섞여 있었다.
퇴역군인 환자 진료를 전담하고 있는 웨스트LA 보훈병원에는 스튜어트와 같이 입원을 해서 치료와 보살핌을 받고 있는 한국전 참전자들이 30여명이 있다. 대부분 몸에 고무튜브가 꽃힌채 침대에 누워있거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중상자들이다. 이제 70대가 된 이들은 인생의 3분의 2인 반세기의 세월을 고통속에 살아온 셈이다.
이 병원에는 연간 7만1,000여명의 재향군인 환자들이 입원 또는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중 한국전 참전 전상자가 이중 20%인 1만4,000명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5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이었던 한국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올들어 잇달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잊혀진’ 용사들일 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미국과 이 ‘잊혀진 전쟁’을 치렀던 북한 군부의 최고 실세인 조명록 차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10일 백악관을 방문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공식 외교관계가 없을뿐더러 테러지원국 리스트에 올라있어 아직도 기술적으로는 ‘테러집단’에 불과한 북한의 최고위급 군부관계자가 군복을 입고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나란히 앉은 모습은 여러모로 ‘역사적’인 사건임에 분명하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격세지감이 들도록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웨스트LA 보훈병원의 한국전 참전 전상자들처럼 역사의 격랑속에서 깨지고 다친 민초들은 이를 어떻게 이해할까. 병원을 방문한 김 총영사를 맞이하며 필립 토마스 병원장은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화해무드가 일고 있는 것에 여기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들도 크게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러나 말을 잃은 환자들이 실제 그렇게 느끼고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지금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또한 이들처럼 ‘잊혀진’ 피해자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