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전역이 파업으로 시끄럽다. 금방 타결될 것 같던 MTA 파업이 예상외로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외곽지역과 LA 중심부를 연결하는 메트로링크 전철의 정비노조까지 일손을 놓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MTA 파업으로 가뜩이나 막히고 있는 프리웨이는 그대로 주차장이 될 판이다. 게다가 부분파업 중인 LA 카운티 공무원 노조마저 11일부터 전면파업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 가운데는 USC 카운티 병원등 의료계 종사자도 포함돼 있어 그 여파가 주민 건강에까지 미칠 전망이다.
LA에 이처럼 많은 파업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올 초부터 조짐이 심상치는 않았다. 청소원들이 가두행진을 벌이는가 하면 지난 5월부터 시작된 할리웃 광고배우 파업은 최장기 기록을 세우며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번 파업의 특색은 참가자들이 과거 스트라이크를 주도해 오던 공장 노동자가 아니라 공무원과 준정부 기관인 MTA 종사자란 점이다. 미국의 주력 산업이 제조업에서 정보산업으로 옮겨지면서 산업노조의 세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공무원 노조의 힘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공무원 노조의 파업사태 뒤에는 데이비스가 역대 가주지사 중 가장 공무원 노조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라는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들이 신경제와 장기호황의 덕을 보지 못한 그룹이라는 점이다. 절대적 가난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상대적 빈곤이다. 직장에서 똑같이 월급이 올라가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한 사람만 올려 주거나 나만 빼놓고 하는 인상은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다. 능력자 우대가 합리적인 것은 누구나 알지만 선뜻 하지 못하는 것은 뒤쳐진 사람의 반감이 가져올 후유증을 우려해서다.
이번 파업 참가자들의 표정에는 상대적 박탈감이 역력하다. 공무원은 신분이 보장돼 있는 반면 호황이 와도 처우에 별 영향이 없다. 하이텍 종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사기업 근로자들은 보너스다 스탁옵션이다 하며 흥청거리고 있는데 자기들한테는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억울함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같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파업 참가자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올 여름 내내 부시에게 뒤져 있던 고어가 열세를 만회하고 선두주자로 부상한 것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다. 그 때 고어가 입이 아프게 강조한 것이 “담배, 제약, 석유회사등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중산층의 이익을 위해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의 기업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있다는 증후는 이것만이 아니다. 한때 “맨손으로 세계 최대의 첨단 기업을 세운 비즈니스의 귀재”로 추앙 받던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반독점 금지법에 걸려 법원으로부터 분할명령을 받은 상태다. 재판을 주재한 토마스 잭슨 판사는 게이츠를 시장독점을 위해 횡포를 일삼는 악덕 기업인으로 묘사했다. 그가 돈만 많이 벌었지 자선에 인색하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 것도 이때 전후다. 미국을 상징하는 세계적 기업 코카콜라는 병에서 이물질이 나온 데다 지속적인 인종차별을 했다는 이유로 직원들에 의해 피소된 상태고 포드와 파이어스톤은 불량 타이어로 이미지가 구겨졌다.
미국인들은 비즈니스와 비즈니스맨과 애증의 관계를 맺어왔다. 카네기, 록펠러, 모건등 비즈니스의 타이탄들에게는 “미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든 역군”과 “노동자를 착취하고 경쟁자를 망하게 한 악덕 상인”이란 상반된 이미지가 따라 다닌다. 재미있는 것은 기업의 이미지가 경기가 불황에서 빠져 나온 순간부터 한참 호황일 때까지는 좋았다가 경기가 정점에 선 순간부터는 추락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기업 이미지와 경기 사이클과의 관계를 연구한 밥 프렉터라는 투자분석가는 “정부가 성공한 기업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때는 거의 예외 없이 호황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며 “반독점 기소와 불황의 시작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적고 있다. 당시 가장 성공한 기업이었던 스탠다드 오일이 기소된 1906년, RCA가 기소된 1930년, IBM이 기소된 1969년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정부가 가장 성공적인 기업을 기소하고 대통령 후보가 대기업을 매도하며 묵묵히 일하던 공무원 노조가 일제 파업에 들어가는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앞으로 호경기는 계속될 것이란 전제 아래서 가능하다. 일부 반론에도 불구하고 호황과 불황의 반복은 자본주의 불변의 원리다. 장기호황은 인간을 근거 없는 낙관에 빠지게 해 과소비와 과투자를 불가피하게 만들며 그것이 불황의 씨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호황의 영원한 지속을 신봉하는 것 자체가 바로 불경기의 전조임을 경기순환사는 보여준다.
(kyungmin@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