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동계올림픽때 미국에서는 여자피겨스케이팅 부문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낸시 케리건이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회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한 무명 소녀였다. 뭔가 느낌이 뻣뻣한 케리건에 비해 이 소녀는 얼굴표정부터 손끝에 이르기까지 온몸에 감정이 담긴 듯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금메달은 케리건을 제치고 이 소녀에게로 돌아갔다. 16세의 고아 - 옥새나 바이율이 신데렐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동계올림픽사상 여자 스케이터로는 두번째로 어린 나이에 금메달리스가 된 바이율의 탁월함은 당시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바이율의 천부적 재능이 빛나는 아름다움의 경지에 도달하도록 자극제 역할을 한 것은 그의 불우함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너무 어려서부터 상실의 아픔을 겪었다. 두살때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10살 때 조부모가 모두 사망했고, 13살때는 어머니가 자궁암으로 사망했다. 그가 마음을 붙칠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은 스케이팅이었다. 뼛속까지 스미는 슬픔과 고독이 혼으로 작용함으로써 그의 스케이팅은 예술적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신데렐라가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올림픽 우승 직후 바이율은 미국으로 와서 프로로 전향해 연간 수백만달러의 고소득자가 되었다. 대저택을 사들이고 10만달러짜리 벤츠를 사고 저명인사들과 어울리며 초호화판 생활을 했다. 차츰 스케이팅은 멀어지고 음주운전 사고까지 내면서 그의 삶은 중심을 잃고 말았다.
10대 스타들이 물질적 풍요를 주체하지 못해 인생을 망친 케이스를 우리는 많이 들어왔다. 무엇이든 손만 뻗으면 가질수 있어서 도무지 소중한 것이 없는 상태가 사람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 지를 잘 보여주는 예들이다.
‘너무 흔해서…’‘물건 귀한 줄을 몰라서…’는 10대 스타들에게만 해당되는 걱정이 아니다. 미국에서 중산층 이상 가정의 자녀들이라면 누구나 들어야 할 말들이다. 실제로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 사이에 만연된 소비풍조를 걱정한다. 14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한 주부가 말했다.
“여름에 아들을 한국에 보냈더니 아이 외숙모가 10만원짜리 운동화를 사줬어요. 아들은 맘에 꼭 든다며 비싼 신발이니 오래 신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개학해서 학교에 가더니 마음이 바뀌었어요. 요즘 유행하는 다른 신발을 사야겠다는 겁니다. 이번에는 70달러짜리 신발이에요.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제돈으로 절반을 부담하겠다며 조르고 조르는데 결국 내가 지고 말았어요”
세 아이를 키우는 한 주부는 얼마전 이사를 하면서 물건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고 했다.
“장난감만 커다란 쓰레기봉지로 몇개씩 나오는데 손때도 안묻은 새것들도 많이 있었어요. 한두번 입고는 처박아둔 옷가지도 산더미같이 쌓이더군요. 굿윌 매장에 대여섯번을 왔다갔다하며 기부했지요. 없어도 될것들을 왜 그렇게 많이 사들였는지 죄책감이 들더군요”
미국의 소비/소유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좋은 예가 있다. 현재 웬만큼 큰집에는 자동차 3대용 차고가 있는 데 보통 900평방피트다. 이것은 50년대 미국의 일반주택 평균 면적이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미국민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한 행복도 조사에서 ‘정말 행복하다’고 대답한 인구비율이 가장 높았을 때가 1957년이었다. 지금의 차고 만한 집에서 식구들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맛을 그 당시 미국인들은 알았었다.
자녀들이 물건 귀한 줄 모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너무 쉽게 원하는 것이 손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다른 데는 알뜰하다가도 아이들에게는 헤퍼지는 것이 보통 부모들의 약점이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소유의 기쁨은 그것을 갖기 위해 애쓴 만큼, 기다린 만큼 비례해서 커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인생에서 기쁨을 누리며 잘 살게 도와줄수 있을까. 인생상담 칼럼 ‘디어 애비’의 애비게일 밴 뷰렌여사는 말했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두배로 늘리고 아이들에게 쓸 돈은 절반으로 줄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