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밀로셰비치가 남긴 교훈

2000-10-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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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가 될 것인가, 아니면 차우세스쿠가 될 것인가"

13년간 철권을 휘두르며 발칸반도에 피바람을 일으키다가 시민혁명으로 쫓겨난 유고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어떤 종말을 맞게 될 것인가에 지구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구소련의 대통령으로 91년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옐친에게 밀려난 뒤 강연료나 인세 등을 받아서 야인으로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다. 반면 루마니아의 독재자였던 차우세스쿠는 89년12월 1,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유혈소요 끝에 권좌에서 쫓겨난 뒤 부인과 함께 총살을 당했다.


본인이야 고르바초프가 되기를 희망하겠지만 권좌에 있는 동안 ‘발칸반도의 백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피를 많이 봤던 밀로셰비치인만큼 "보복은 없다"는 대통령 당선자 코슈투니차의 천명에도 불구하고 차우세스쿠의 전철을 밟게 될 확률이 높다.

밀로셰비치가 실각한 이유는 코소보에서의 인종말살 정책추진 등 비인도적 행위 때문이 아니다. 세르비아계 중심의 유고 국민들은 서방측 공습 초기에는 오히려 민족주의를 내세운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었다. 그러나 지난해 3월부터 78일간 계속된 NATO 공습은 교량, 도로, 정유공장등 유고 전역의 사회기반 시설 대부분을 파괴했다. 그 결과 과거 티토시절 소련과 미국 사이 등거리 외교를 통해 동구권에서 가장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던 유고 국민들은 하루하루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는 고초를 겪는 신세가 됐다. 유고 국민들이 밀로셰비치에게 등을 돌린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배고픔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밀로셰비치는 이같은 민심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집권 연장을 위해 내년 7월까지 임기가 남은 상태에서 조기선거를 실시했다. 국민들의 지지를 과신한 나머지 ‘민족주의’를 내세워 외세 간섭과의 대결 구도로 이끌면 낙승을 거둘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한편 미국은 눈엣가시 같던 밀로셰비치를 이번 기회에 제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인접 헝가리에 야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사무소까지 차렸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정권이 교체되면 유고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 것”이라며 배고픈 유고 국민에게 야당 후보를 찍도록 노골적으로 부추겼다.

지난달 24일 실시된 대선에서 패배한 밀로셰비치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결선 투표를 하자며 나섰다. 이에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수도 베오그라드 남부의 탄광촌 콜루바라의 광부들이 과거와 현재의 생활수준을 비교하며 밀로셰비치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시위에 돌입했다.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경찰과 군부까지 밀로셰비치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번 유고사태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다. 경제 사정이 유고보다 좋을 것이 없는 북한의 김정일 입장에서는 철벽같아 보였던 밀로셰비치 정권이 굶주림에 지친 민중들 손에 의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을 목격하고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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