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울의 지하철

2000-10-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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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한국은

▶ 조광동<본보 시카고지사 편집국장>

한국을 갈때 마다 나는 가능한한 지하철을 이용하려고 했다. 교통체증에 구애되지 않아 약속 시간을 지킬수 있는 것이 좋았고, 미국과는 비교되지 않을만큼 깨끗하고 쾌적한 전철 분위기가 좋았다. 무엇보다도 지하철속에서 보통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수없이 만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긴 터널을 걸을때면 내가 서울시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전철의 어느 쪽을 타야할까를 정하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을때면 내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지하철을 타면서 첫눈에 달라진 것이 전동차 벽광고였다. ‘닷 컴’ 광고가 크게 늘고, 광고마다 인터넷 주소가 없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팔순이의 투데이 송’(나중에 알고보니 팔순이가 아니라 판순이였다), ‘배철수의 음악텐트’(이것 역시 배칠수의 오인이었다)란 광고와 처음 눈이 맞닥뜨렸다. 그리고 광고에 영어가 부쩍 늘고 외국인 얼굴이 많아졌다. 사회봉으로 큼직한 빵을 두들기는 사진옆에 eSale 경매라고 쓴 글자가 고개를 갸웃둥하게 했다. 인터넷 경매 광고 같았다.


전철 광고를 보면서 생소하게 마주친 것이 원색적인 광고 문구였다. ‘엽기적으로 싸다’ ‘골때리게 재미있다’ ‘남자들이여 당당히 일어나라. 남자 정력제 위풍당당 동충하초’ ‘디지털 엽기방송’(이 문구는 글자를 뒤집어서 썼다) 광고 문구가 사람들의 언어의식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어느 작가에게 "언어가 파괴되는 것은 아닌가요?" 하고 물었다. 파괴된다기 보다는 언어의 성격이 비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어느 교수는 광고문안이 격해지는 것은 보통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의식을 반영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광고문안과는 다르지만 인터넷 이메일을 대하면서 언어가 파괴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이메일을 보낼때 교수님, 안뇽?하고 씁니다. 안녕하세요? 하는 말이겠지요" 인터넷 대화는 속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언어를 줄여서 쓰고 때로는 말을 만들기도 한다는 설명이었다.

지하철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셀룰러 폰이다. 휴대전화를 들지 않은 젊은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휴대전화는 생활필수품이 되어 있었다. 목걸이처럼 목에 건 젊은이도 자주 눈에 띄였다. 전철 안을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서 따르릉 하는 소리가 들리고 갖가지 전화 목소리가 합창되고 있었다. 전철을 타자마자 어느 30대 아주머니가 핸드백에서 셀룰러폰을 꺼냈다. "뭐해? 밥먹었어?... 오늘 아이 유치원 개학하는 날이라 데려다 주고 시내좀 나왔어" 조용한 전철안을 울리는 여성의 말에 아무도 신경을 쓰는 것 같지가 않았다. 맞은편에서는 한 여학생이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는지, 아니면 메시지를 체크하는지 심각한 얼굴을 했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40대 중년남자는 전화로 물건 배달을 지시하고 있었다. 전철안이 사무실도 되고 집 안방이 되기도 했다.

지하철이 한참을 가면 거의 빠짐없이 전철행상이 들어왔다. 처음 만난 행상은 선풍기 커버를 파는 젊은이였다. 얼른 보면 양복을 보관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몸통을 넓게해서 선풍기를 넣을수 있도록 한 것으로 1,000원이었다. 대나무 주걱을 파는 사람은 "플라스틱 주걱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것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이미 검증된 사실입니다" 하면서 건강에 좋은 주걱을 선전했고, 어떤 행상은 유리벽이나 타일벽에 압력으로 부착할수 있는 수건이나 옷걸이를 팔기도 했다.

전철안에서 부닥치는 또다른 사람들은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방문에서는 돈을 구걸하는 사람을 전보다 덜 만났다. 슬픈 노래나 찬송가를 녹음으로 틀면서 플래스틱 바구니를 들고 사람들 틈을 다니는 사람들의 때묻은 얼굴은 언제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번에 만난 걸인 가운데 한사람은 왼쪽 손과 팔이 기형적으로 뒤틀어지고 걸음걸이가 뒤뚱거리는 50대쯤 보이는 남자였다. 한발짝씩 걸음을 옮기면서 바구니를 내미는데 어느 젊은이가 열심히 "예수를 믿으라"는 전도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 시선이 이 전도자에게 집중하자 구걸하는 남자는 곱지 않은 눈으로 전도하는 젊은이를 바라다 보고 있었다. 전도자의 전도문 암송이 끝나자 걸인 남성은 일을 계속했다.

한참뒤 전철역에서 내린 나는 약속 시간이 조금 있어서 사람들이 빠져 나가는 층계를 바라보며 등받이 없는 긴 의자에 앉았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빈 전철 역, 내가 앉은 의자 뒤에 어디선가 낮익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참전 전동차 안에서 본 걸인 남자였다. 다른 남자 한사람과 앉아서 돈을 계산하고 있었다. 뒤로 돌아갔던 손이 정상으로 돌아와 손을 세고 있었다.

지하철은 사람들의 물결과 삶의 에너지가 넘쳐 흘렀다. 영등포 대방역의 아침 출근모습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 삶의 현장이었다. 전철 계단을 쏟아져 내려오는 사람들 물결이 워낙 도도해서 계단위로 올라가던 나는 층계 난간을 붙들고 서 있어야 했다. 세차게 쏟아져 내려오는 사람들의 물살을 헤치고 올라갈수가 없었다. 저 거센 삶의 계단을 내려오는 물길에서 누군들 멈춰 설수가 있을까. 삶의 격류에서 멈출수 없는 사람들, 그 모습이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조국인들의 삶으로 닥아왔다. 사람들의 썰물이 빠져나간 썰렁한 대방 전철역에서 미국의 삶이 얼마나 잔잔한가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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