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KO펀치 없는 무승부

2000-10-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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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앨 고어와 공화당 조지 W. 부시가 일대일, 이슈대 이슈로 맞섰으나 경천동지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KO펀치를 날린 사람도 없었고 KO를 당한 사람도 없었다. 두 후보 모두 우리에게 익숙해진 모습으로 토론에 임했다. 고어 부통령은 준비를 철저히 했고 질문마다 10개 이상의 통계를 내세워 답변에 나섰다. 부시 주지사는 좀더 여유 있는 모습으로 유머를 보이고자 했지만 뜻대로 된 것 같지는 않다.

부시는 평소 어휘를 적절히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대중들의 기대가 낮은 편이었고 그 덕을 보았다. 이날 토론에서는 부시가 어휘를 적재적소에 구사하는지 여부가 관심을 끌었는데 제대로 해내긴 했다. 그러나 부시는 이날 토론 내내 수세에 몰렸다. 이 점에서는 토론가 고어가 유리했다. 대선 토론의 포맷은 사실 고어에게 유리하다.

그러나 고어는 수치를 내세운 답변으로 종종 제한시간을 넘겨 사회자 짐 레러의 제지를 받았다. 부시는 자신의 감세안에 대한 고어의 반복되는 공격에 화가 나서 "부풀린 수치"라고 반박했다.


이날 고어의 주된 메시지는 부시의 세제안이 미국인의 "1% 부자들"에게 수십억달러의 혜택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그 주장이 옳다고 할지라도 이날 토론 도중 지나치게 남용된 감이 있다. 두 사람은 저마다 자신들의 메디케어 개혁안이 더좋고 신속한 혜택을 부여한다며 챙피한 줄도 모르고 노인표를 위해 추파를 던지기에 급급했다.

부시는 자신이 워싱턴에 들어가면 클린턴-고어 행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들을 공화-민주 양당 합의를 통해 이끌어 낼 수 있는 아웃사이더라는 이미지를 심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막판에 고어의 기금모금 스캔들을 언급, 인신공격을 한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그같은 이미지를 스스로 깨뜨리고 말았다.

고어의 최악의 답변은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이슈에서 나왔다. 고어는 유고문제 해결을 위해 러시아와 핀랜드의 도움을 받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답했으나 이는 기대했던 수준은 아니었다. 텍사스 재난에 관한 부시의 답변이 훨씬 더 어필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날 토론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것으로 뚜렷한 승자가 없었다. 고어가 강력한 대통령 후보 이미지면에서는 다소 우위를 보였으나 부시도 큰 실수를 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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