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야심찬 후보’ 고어의 승리

2000-10-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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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뉴욕타임스 사설>

지난 수개월 동안 서로 떨어져 스파링을 해왔던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가 마침내 맞붙었다. 고어는 3일 밤 토론에서 자신감을 갖고 공격을 하는 야심찬 후보로 비쳐졌으며 반면 부시는 고어의 정부기구 확장 시도에 대해 대중의 저항을 선동하려는 아웃사이더라는 인상을 주었다.

이날 토론이 있기 전 고어가 그의 공격적인 토론 스타일을 다소 누그러뜨리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왔다. 사실 고어의 첫출발은 다소 평범했고 오히려 부시가 자신감에 차있는 듯했다. 부시는 고어의 "메디-스케어(메디케어 수혜자를 놀라게 한다는 의미) 전략"에 대해 제대로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고어는 곧 전투대형으로 전환한 다음 부시의 공격리듬을 무너뜨렸다. 부시는 고어가 수치를 앞세워 공격을 가해오자 "부풀려진 수치"라고 반박했으나 그에 맞설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환경과 낙태문제에 접어들면서 토론국면은 고어에게 보다 유리하게 돌아갔다. 고어는 여성들의 선택권을 지지했으며 알래스카에서의 오일 및 개스 개발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자신을 ‘작은 석유인’이라고 표현한 부시는 미국내 새로운 에너지 개발계획을 밝혔다.


이날 토론은 그동안 여론조사와 미디어 분석을 통해서만 두 후보를 접해 왔던 일반 시민들이 처음으로 두 사람의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과 능력에 대해서 직접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황으로 중계된 이날 토론에서는 과거 다른 대선 토론에서 볼 수 있었던 큰 실수나 결정적 충돌은 없었다. 그래도 두 후보의 정부 역할에 대한 견해차는 주목할 만했다. 부시는 고어의 감세안이 소수의 선택된 계층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라고 비난했고 고어는 부시의 세제안이 잉여세수를 보건, 교육, 방위비로 지출하는 대신 1%의 부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주말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금년 내내 오르락 내리락하던 고어의 정치적 위상은 이날 토론에 들어갈 때는 상당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중은 고어가 의회 지도자들과 세계 정상들을 컨트롤하는데 있어서 부시에 비해 한수 위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어는 또 민생문제에 있어서도 부시에 비해 유권자들에게 근접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토론의 중심이 된 이슈중 하나인 잉여예산 문제의 경우 이를 세금삭감을 통해 납세자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15%에 불과했고 절대다수가 이를 부채 탕감과 메디케어, 소셜시큐리티 등의 부문에 사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이날 토론에서 고어의 주장과 일치하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또 앞으로도 부시에 대한 추가 검증이 계속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부시는 자신의 백악관 입성 자격에 대한 유권자들의 의구심을 불식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부시는 남성들과 기혼 여성들 사이에 인기를 얻고 있으나 일반대중은 그가 도전자격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토론전 부시의 참모들은 부시가 이번 토론에서 성숙, 침착 그리고 자신이 제안한 프로그램의 내용을 충분히 잘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 성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쉬운 주문인지는 모르지만 대중은 그같이 눈에 안 보이는 자질을 판단하는 재주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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