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녀 공동탕과 심경변화 원리

2000-10-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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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 철 주필

‘남녀 공동탕’ 하면 일본을 연상하겠지만 사실은 독일이 더 유명하다. 일본은 관광지 온천에 남녀 공동탕이 있지만 독일은 시내 한복판에 헬스클럽의 일종으로 의젓하게 자리잡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가면 ‘타우누스’(TAUNUS)라는 유명한 남녀공동탕이 있다. 아무리 배짱있는 남자라 해도 처음 가는 사람은 목욕탕 문을 열자마자 몸둘 바를 모르게 된다. 나체로 활보하는 여성들에게 기가 죽어 슬금슬금 기게 된다. 남녀 모두 나체로 수영을 하고, 사우나에 누워 있으며, 스탠드바에서는 벌거벗은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처음에는 “이거 정말 가관이로구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더욱 희한한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등 가족이 그룹으로 와서 목욕하는가 하면 시아버지가 며느리와 손자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점이 부부위주인 일본의 공동탕과 다르다. 사실 로마나 파리와는 달리 독일에 가면 관광거리가 별로다. 그러나 독일의 남녀 공동탕은 한번 구경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남녀공동탕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이유는 이곳에 들어 갔을 때 자신에게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경험해 보라는 뜻에서다. 처음에는 얼굴 붉어지고 부끄럽던 것이 한 15분만 지나면 언제 그랬드냐 싶게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갑자기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기분이고 도덕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도 떠올리게 된다.

사람이 수치스럽게 생각하느냐 자랑스럽게 생각하느냐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검은 것도 하얗게 보이고 하얀 것도 검게 보인다.

74년 2월 4일 미국의 신문재벌 랜돌프 허스트의 딸 패트리샤 허스트가 도시 게릴라인 SLA(Symbionese Liberation Army)에 납치되어 미국이 몇 달 동안 이 뉴스로 달아 오른 적이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패트리샤 허스트는 납치된후 세뇌되어 SLA 멤버들과 함께 총을 들고 은행을 털었기 때문이다.

패트리샤가 극적으로 체포되어 그녀가 무죄냐 유죄냐의 재판이 열렸을 때 패트리샤가 진술한 것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내가 SLA 멤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제일 먼저 놀란 것은 이들이 칫솔을 같이 쓴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너무 더럽게 생각되어 함께 칫솔을 쓰지 못하겠다고 했더니 멤버들이 아직도 자본주의 사상에 젖어 있다며 더 혼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겁이 나서 칫솔을 함께 쓰는 것을 받아 들였다. 그런데 얼마 지내고 나니까 칫솔을 쓰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더러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두번째 놀란 것은 내가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는데도 다른 SLA 멤버들이 태연스럽게 들어와 세수하는 것이었다. 화장실 문을 항상 열어 놔 다른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대소변을 봐야 했다. 처음에는 너무 창피했으나 다른 멤버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사람은 주변의 환경에 따라 뻔뻔해지고 얼굴 두꺼워질수도 있다는 것을 허스트의 케이스가 말해준다. 남녀공동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분위기가 벌거벗은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 얼굴 들고 나체활보하는 것도 당연시 취급된다.

사회의 분위기도 그렇다. 너나 할 것 없이 해먹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면 못해먹는 사람이 무능력자처럼 보인다. 가정에서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속옷 바람으로 왔다갔다 하면 아이들도 옷벗고 다니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된다. 사회나 직장이나 가정이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느냐-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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