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촌지와 뇌물

2000-10-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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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교육열

▶ 최종윤 (수필가)

한국인의 교육열은 한국이나 이곳, 다름이 없다. 한때 한국 교육계에서는 촌지라고 하는 뿌리 깊은 관행이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사회정화 차원의 노력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개선이 됐다.

그러나 교육환경이나 제도가 월등히 좋다고 하는 미국에 와서까지 일부 한인 학부모들은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언젠가부터 LA 인근의 한인학부모들은 촌지의 개념을 넘어 뇌물을 갖다 바치고 있다. 뇌물이란, 「자기의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하여 남에게 몰래주는 정당하지 못한 재물」이다. 법률적 해석으로는「뇌물죄의 수단이 되는 물건」또는「직무에 관련되어 주고받는 불법적 보수」다. 선생님들에게 내 아이에게만 특별한 관심과 기회를 달라고 뇌물을 갖다 바치는 행위는 범죄다.

소문에 의하면, 고급 향수나 핸드백 정도를 들고 찾아가던 한인 학부모들 가운데 이제는 몇백달러 정도를 넘어 1,000달러 단위의 현금을 넣어서 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한인 학부모의 뇌물경쟁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이야기였지만 요즈음에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양하던 미국인 교사들 가운데는 습관이 되어 한인 학부모들의 뇌물을 은근히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선생님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일이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다. 대다수 선량한 선생님들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뇌물을 제공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다 보면 머지 않아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자식 교육은 선생님에게 뇌물을 바치는 것만으로 부모의 역할이 면제되지 않는다.


많은 한인들은 ‘하버드 병’에 걸려 있다. 한해에 50명씩 들어가지만 졸업은 절반도 못한다고 한다. 부모의 강압에 못 이겨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좋은 대학에 가긴 가지만, 미국 대학은 스스로가 해야겠다는 의지가 없는 학생에게는 졸업하기 힘든 곳이다.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에서 치맛바람을 보고 어이없어 눈흘기며, 그게 싫어 이민 온 사람들이다. 한국에서의 대학은 입학은 어렵지만 졸업은 쉽다. 미국대학은 반대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대학에 가서도 뇌물로 졸업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의 자녀들은 한국에서처럼 일류대학 병에 걸려야 할 이유가 없다. 모두가 부모의 욕심이다. 부모가 못 이룬 꿈을 자식 통해 얻으려는 대리만족은 자녀들의 바람직한 미래를 빼앗고 불행하게 만들뿐이다. 뇌물로 선생님의 환심을 사 자기 자녀만 특별한 대접을 받으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어느 학부모의 말이다. 선생님이 생선을 해부하기 위해 실습용 생선을 한 마리씩 사오도록 했다고 한다. 대부분 학생들이 마켓에서 생선을 사왔는데 K의 어머니는 수업시간에 맞춰 살아 숨쉬는 큼직하고 싱싱한 생선을 한 마리 사서 자기 아들에게 갖다 주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매우 기뻐하며 학생들을 한데 모아 K의 싱싱한 생선으로 수업을 했다. 이런 것이 바람직한 학부모의 자세가 아닐까.

이곳 미주사회에서 한인 학부모들이 각급 학교의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치맛바람은 학부모로서의 스승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떠나, 뇌물을 제공함으로써 사회 문제를 야기시킬 위험이 있다. 촌지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촌심이 된다. 말 그대로「작은 뜻을 나타낸 조그만 선물」이다. 작은 마음의 표현이라면 주는 학부모나 받는 선생님 모두가 부담이 없어 좋다. 미국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하는 선물은 20달러를 넘지 않거나 댕큐 카드면 족하다. 그것이 그들의 오랜 문화요 역사다.

선물 주고받기를 좋아하는 미국 선생님들이지만, 선생님들에 대한 선물로 인한 잡음은 들어보지 못 했다. 한국에서처럼 선생님들의 촌지를 원천 봉쇄하려는 정부의 호들갑도 본 일이 없다. 미국이라고 해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교육면에서는 훨씬 앞선 사회임을 인식하고 치맛바람보다는 성숙한 코리안 아메리칸 학부모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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