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지막 전쟁

2000-10-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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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황성락 (사회부 차장대우)

9월18일 일제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이하의 삶을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접수시켰다.

이어 가진 기자회견장에서는 CNN, AP 등 미국의 주요언론사들이 대부분 참석해 취재에 열을 올렸고 이 내용은 수시간후 전세계로 타전됐다. 그후 시카고 트리뷴지가 피해자중 한명인 김순덕씨의 이야기를 대서특필 했고 공영방송으로 전세계에 전파를 보내고 있는 라디오 방송 NPR이 김씨와의 인터뷰를 내보냈으며 CNN 라디오 방송도 이를 심도있게 다뤘다. 그리고 2일에는 미국언론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타임스지가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크게 보도했다. 미언론은 위안부 문제를 다루면서 일단 그들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진실을 여과없이 그대로 전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일본정부를 상대로 그것도 미국에서 이뤄지는 첫 재판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진행중인 이번 소송이 어떤 결말을 얻어낼 것인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고 있는 관계자들의 말을 들으면 장기전이 될 것은 분명하다.


꽃다운 나이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해야 했던 피해자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치유하고 파렴치한 죄를 짓고도 이를 부정하고 있는 파렴치한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아내려는 이 소송에 대한 한인사회의 반응은 아직 미온적이다. 소송 사실을 제대로 모르는 것도 있지만 지난 역사에 대해 무관심한 자세탓도 있다. 물론 재판은 변호인단이 맡아 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이번 소송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린 사안임에 틀림없다.

지난달 20일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레이번하우스 포이어룸에서 열린 ‘존엄과 명예의 여성을 위한 2000년 인권상’ 시상식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얼굴에 굵은 주름이 가득한 한국인 할머니들은 상을 받을때마다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 식장은 울음바다로 변해 버렸다. 상을 받는 것이 감격스러워서가 아니라 지난 고통의 세월과 이번 소송이 이뤄지기까지 걸어야 했던 순간들이 서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2차대전의 마지막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깨끗한 과거청산만이 밝은 미래를 향할 수 있다. 이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한국정부 및 한국인들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배리 피셔 변호사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쯤 되새겨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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