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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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 블라인드가 되자

2000-10-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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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생각

▶ 최창진<라미라다>

이 글의 제목을 보고 어리둥절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칼라 블라인드’라면 우리말로 ‘색맹’이 아닌가? 색맹은 일종의 장애인데 ‘색맹이 되자’니 무슨 뜻인가?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당연하다. 그러나‘칼라 블라인드’란 말은 또 다른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사람의 ‘피부의 색깔’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는 경험이 많은 우리이지만 우리자신이 가해자가 되는 인종차별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 하는 말이다.

어느 날 한국일보 오피니언에 난 어느 독자의 글에서 “흑인이 들어와서, 백인이 또 옆에서, 동양인이 …”하며 피부색깔로 사람들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하는 것을 읽었다. 아무리 다인종 국가이지만 사람들을 피부색깔 하나만 보고 구분하는 것은 인종별 스테레오 타이핑의 극단적 실례라고 할 것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미국언론에서는 어떤 사건을 보도할 때 연루자들의 인종을 언급하지 않고 보도하는 것이 정도로 돼있다. 꼭 필요할 경우가 있다면 모를까 기사만 읽고는 연루자들의 인종을 알수 없다. 그것은 경험을 통한 교훈에 따른 결과가 아닐까 한다. 이 사회에서 일일이 인종을 밝히면 자연히 인종간의 알력과 긴장을 야기 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할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한국에서 A지방 신문에서 어느 범죄의 하수인 출신지가 B지방이라고 밝히고 B지방 신문에서는 범죄가 있으면 그 범인이 A지방 출신이라고 항상 밝히기를 한다면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A-B 양 지역 감정을 자극하는 것밖에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세계 속의 우리다. 세계 어디에 갖다 놓아도 당당히 통하는 안목과 사고방식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사고를 해야 한다. 우물안 개구리 행태는 이제쯤 벗어버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칼러 블라인드’(인종색맹)가 모두 되어야 한다. 모든 인종은 그 피부색으로 평가될 것이 아니라 그 인간성으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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